[장병욱의 재즈 너나들이] 홍경섭·이지연 부부

가까이는 26일 부산 기장군 양산문화회관에서 듀오 연주가 있었다. 서울을 벗어나 찾은 해변의 정경에 울려 퍼지는 ‘오텀 리브스(Autumn Leaves)’ 등 낯익은 스탠더드들이 생생히 살아났다. 홍경섭(40ㆍ더블 베이스)-이지연(39ㆍ피아노, 지휘, 작곡, 편곡) 부부.

세 차례 내한공연을 했던 류 태버킨(색소폰)-도시코 아키요시(피아노, 지휘) 부부를 연상케 한다. 태버킨 부부는 캄보로 혹은 대편성 밴드로 특유의 재즈를 들려주었다. 공교롭게도 홍경섭-이지연, 태버킨-도시코 두 부부 모두 부인이 피아노를 맡는다. 그러나 어덜트 컨템포러리에 가까운 태버킨 부부의 유장한 재즈, 홍경섭 부부의 활력과 영감 넘치는 재즈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홍경섭- 이지연 부부의 활동은 ‘따로 또 같이’다. 현재 이지연은 클럽 올댓재즈, 천년동안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8인조 캄보를 지휘하고 있다. 홍경섭은 천년동안도에서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베이스 번갈아 가며 연주하는 세션면이다. 그러면서 물론 협업도 활발하게 한다. 둘만의 듀오를 보자. 발라드 ‘올 더 씽스 유 아(All The Things You Are)’든 즉흥성 강한 빌 에번스의 ‘타임 리멤버드(Time Remembered)’든 둘의 호흡은 그야말로 부창부수다. 그 직접적 결과가 함께 만든 두 장의 음반이다. 2112년 3월에 나온 1집 ‘브라이트 그린 올모스트 화이트(Bright Green Almost White(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연상케 하는 제목이다)’에서 남편은 프로듀서 겸 연주자였다. 올해 11월 11일 발매한 2집 ‘더 플레이스, 미닝, 유(The Place, Meaning, You(‘다시 그 곳에’라고 은유적으로 옮겨져 있다)’에서 그는 프로듀싱만 했다. 이지연은 물론 두 음반에서 메인 뮤지션이다.

홍경섭, 이지연 재즈듀오. 한주형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

네덜란드의 뉴트레흐트예술학교와 프린스클라우스대를 함께 졸업한 것은 두 사람의 이력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공통분모일 것이다. 그 보다 훨씬 전, 이들은 한국의 인터넷 재즈 동호인 모임 ‘프리 톤(Free Tone)’의 회원이었다. 인연은 거기서 출발했다. 두 사람은 레드 갈란드, 오스카 피터슨 등 기교적이고 서정적인 재즈 피아니스트를 좋아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 모임에서 커플이 심심찮게 나온다는 나름의 전통을, 결과적으로는 이어받은 셈이다.

2003년 네덜란드에 유학 간 것은 이들 재즈의 전통성을 말해준다. 학사과정은 실용음악이 특히 강한 프린스클라우스대에서, 석사는 뉴트레흐트예술학교에서 함께 마쳤다. 학사과정에서는 테크닉, 기초 지식, 무대 연주 등을 배우고 석사과정에서는 자신의 스타일에 집중해 개성적 아티스트로 태어난다. 예술가로서 가장 중요한 성장의 과정을 두 사람이 자기 손금 보듯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국내서 더 이상은 낯설지 않은 재즈 커플 중 하나다. 이들의 입을 빌어 확인한 국내의 부부 재즈 뮤지션은 10쌍 정도다. 이지영(피아노)-최은창(베이스), 박현선(보컬)-박지훈(기타), 이연숙(보컬)-김성수(베이스), 해랑(보컬)-김인영(베이스), 이경구(색소폰)-김영애(피아노) 등을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재즈 커플로 파악하고 있다. 부부는 “재즈 커플의 결혼은 재즈 유학의 파생적 현상”이라며 “앞으로는 스승과 제자 커플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흥미로운 예측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재즈 커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바람직한 현상이에요. 음악이라는 고독한 작업을 이겨나가는 과정, 서로를 잘 알아가는 과정이지요. 이것이 심리적 안정감에 큰 도움을 줍니다. 현실적 조언도 큰 힘이 되고요.”

예술적인 면에서 실제적 도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연주와 작곡 행위를 구분해야 합니다. (함께 있다는 의미는) 곡 쓸 때는 전혀 다르다. 작곡은 결국 고독한 창작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비해 공연은 절충점이지요.” 예술가임을 자처하는 한, 결국 문제는 아름다운 거리라는데 낙착될지도 모른다.

홍경섭은 초등학교부터 메탈 밴드 메탈리카와 메가데스의 팬이었다(놀랍게도!). 본격적인 음악 경력이 헤비 메탈부터 시작한 것이다. 잠실고 재학 중 메탈은 물론 인디 음악에 빠졌고 후에 가요 쪽으로 기울다 자연스럽게 펑크와 재즈로 넘어갔다. 그가 “록의 영향을 받은 베이스로 재즈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출발점을 돌아보고 싶다는 욕망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어쿠스틱 베이스로 메탈 분위기를 내는 거죠. 그러나 홍보는 재즈로 할 거예요.”

반면 이지연의 출발은 얌전했다. 선화예중 들어가 추계예대까지 피아니스트의 길을 조용히 걷는 듯 했다. 그러나 대학 3학년 때 중퇴하고,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뛰어든 동네는 영화 음악판이었다. 이후 SBS로 들어가 다큐멘터리ㆍ드라마ㆍ영화 음악을 총괄하는 방송음악부터 대중음악의 실재를 학습해 갔다. 그러다 1998년 PC통신 천리안의 음악 동호회 프리톤에 들어가 비로소 재즈, 나아가 남편과 만났다. 키스 자렛, 오스카 피터슨, 빌 에반스와 자연스럽게 친해져 결국 유학의 길까지 선택했다. 그런데 유학 가서 공부하다 보니 몸에 배어 있던 클래식이 더욱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고민했다. 그러니 쉽지 않은 길이었다.

|||

그녀의 본격적인 재즈 피아노 수업은 비밥이었다. 축적됐던 클래식 지식은 전혀 활용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한 갈증의 돌파구가 작곡이었다. 교실에서는 난해한 음악 이론이 결부된 엄청난 분량의 숙제가 주어졌다. 그러나 클래식 공부 덕분에 비교적 쉽게 해갈 수 있었다. 이지연의 퓨전은 그 비조(鼻祖) 마일스 데이비스가 말한 바 “내면으로부터의 퓨전”이었던 셈이다. 창조성과 개성을 강조하던 그 곳의 수업 방식으로부터도 덕을 봤다.

그녀는 일단 8~11인조 컨템포러리 앙상블에 주력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두 달에 한번씩 규칙적으로 무대에 설 것이다. 남편은 매니저와 기획 일에 주력하며 아내의 행보에 운을 맞출 계획이다.

부부는 자신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현재 한국의 재즈 판도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들의 위상에 대해 물었다.

아내 이씨의 대답은 이랬다. “한국의 재즈는 매우 다양해졌다. 비밥, 프리, 퓨전, 포스트밥 등 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컨템포러리 앙상블은 없다.” “유럽에서 재즈란 클래식에서 하드밥, 모달재즈 등 모든 재즈 장르를 아우르는 광의의 현대음악이다.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티의 외연을 최대로 확장한 음악이다.”

남편은 아내의 대답을 이렇게 받는다. “(어찌 됐건) 나는 곡 쓸 때 멜로디는 쉽게, 연주는 힘들게 한다. 주제 넘지 않는다면 현대음악으로 가고 싶다.” “나는 개개인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의미의 현대성이다.”

동시대성이라는 문제에서 두 사람은 약간 길항하는 듯 하다. 그러나 라이브 무대에 대한 강조는 포기할 수 없는 가 보다. 결국 남편은 “공연장에 자주 오시라”는 지론을 꺼내 든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음반이 무지무지 많다는 자칭 재즈 마니아를 만난 적 있다. 그런데 우리가 듀오로 변주를 많이 해 가며 ‘올 더 씽스 유 아’를 연주했는데도 나중에는 ‘왜 그 곡을 안 했느냐’고 물어 내심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결국 둘은 본질보다 외양에 치중한 한국 재즈의 실상을 나름 질타한 셈이다. “재즈에 거품이 낀 것은 라이브 무대를 안 보기 때문”이라는 남편의 말이 몹시 시의적절했다.

아내 이지연은 기회가 되면 둘만의 듀오 앨범을 내고 싶다는 작은 꿈을 갖고 있다. “2집의 ‘라이트 하우스 비하인드(Lighthouse behind)’는 어두운 밤의 등대 같은 남편을 생각하며 쓴 곡이에요.” ‘악덕 재즈 공장장(!)’이라는 별명처럼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인 홍경섭이 외롭지 않은 이유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

인기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