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오중흡 7연대 칭호를 수여받은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991군부대'를 방문했다고 21일 보도했다. 촬영일시는 최근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둘 사이에는 ‘1’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외교 무대에서 숫자 ‘3’이 갖는 복잡성은 ‘2’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두 나라가 마주 앉는 양자 협상과 세 나라 혹은 그 이상이 나서는 다자 협상은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성과를 내는 것도 다자협상이 훨씬 더 어렵다. 양자 협상은 힘의 강약으로 쉽게 결정되지만, 3자 혹은 다자 관계는 힘의 크기 외에 다양한 요소가 개입된다. 일례로 가장 약한 ‘제3국’이 두 강자 가운데 누구 편에 서느냐에 따라 다양한 구도가 연출될 수 있다.

숫자 ‘3’이 갖는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성격은 동서고금을 관통한다. 그 이름에도 ‘3’이 들어가는 삼국지가 대표적이다. 특히 위(魏)ㆍ촉(蜀)ㆍ오(吳) 가운데 가장 약한 촉나라 유비의 참모 제갈량이 제안한 ‘천하삼분지계’는 드러내놓고 ‘3’의 복잡성을 노린 경우다. 위라는 강대국을 상대하기 위해 세력이 적은 오와 촉이 연합해 생존을 도모한 뒤, 힘을 키워 종국에는 중원을 통일한다는 게 제갈량의 책략이었다.

요즘 북한을 보면, 최고통치자 김정은이 삼국지를 읽은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구 소련 붕괴 이후 쇠퇴해 관심이 줄어든 러시아를 불러들이는 방식으로 중국 일변도였던 북한의 동맹외교를 단숨에 ‘북ㆍ중ㆍ러’ 삼각구도로 재편하고 있다.

김정은의 오른팔 최룡해가 지난 주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러시아는 기다리기라도 한 듯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까지 최룡해를 만나 주며, 북한 지지를 약속했다. 북한 외교의 당면 현안인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고, 북한과 군사협력도 강화키로 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초에는 김정은이 러시아를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알렉산더 맨스로브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전망이다. 촌스럽게 기차를 탔던 선대와 달리, 김정은은 비행기 타고 모스크바 공항에 내리는 세련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 중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지난 18일 '조국전쟁중앙박물관'을 비롯한 모스크바 시내 곳곳을 둘러봤다고 2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의 행보는 1960년대 중ㆍ소 등거리 노선을 취하며 실리를 얻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행보와 유사하다. 중국을 등에 업은 김일성이 “백두산에 다시 들어가 감자를 캐먹을지언정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고 소련과 맞섰던 것처럼, 김정은도 자신을 경시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최룡해가 금시계를 찼다’, ‘약속 시간에 늦는 결례를 저질렀다’등 중국 언론이 비판적 기사를 쏟아낸 것도 북한의 러시아 접근을 막고 싶은 복잡하고 불편한 속내를 방증한다.

문제는 북한의 이런 ‘삼각 외교’가 미국ㆍ러시아의 ‘신 냉전구도’와 맞물려 대한민국 외교에 예상치 못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이 우리와 가까워지면서 가시권에 들어온 것처럼 보였던, 한국 주도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의와 협력이 러시아의 ‘몽니’로 물거품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한국이 신 냉전의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맨스로브 교수의 우려는 흘려 넘기기 어렵다. 그에 따르면 미국 제재로 경제가 만신창이가 됐지만, 현 상황을 서방과의 전쟁으로 인식하는 대다수 러시아인은 애국심으로 푸틴 대통령을 지지한다. 그런데 푸틴은 크림반도 합병을 통일 과정으로 여기고 있으며, 미국 편에서 이를 반대했던 한국의 통일 정책에 반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북ㆍ러 관계가 진전되기 이전부터도 급변 상태가 발생하면 러시아가 휴전선 북쪽 동해상에 대한 안보를 담보하기 위해 나진항으로 병력을 이동시킬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주도 통일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면,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일부 잔존 세력의 요청을 빌미로 한반도 북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재연시킬 수도 있다.

궁지에 몰린 김정은 입장에서는 모처럼 제대로 된 포석을 한 셈이지만, 우리로서는 미ㆍ중 위주 ‘2차 방정식’에 러시아 변수가 끼어들면서 훨씬 복잡한 고차 외교방정식을 풀어내야 할 처지가 됐다.

조철환 워싱턴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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