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15. 육아엔 '보상'도 중요하다

어딜 가나 아들을 액세서리처럼 붙이고 다니는 요즘, “부럽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동네 한 은행의 모 과장은 육아휴직을 하고 싶지만 남자 직원의 육아휴직 전례가 없어 눈치만 보고 있다고 했고, 공원에서 종종 마주치는 한 아주머니는 손주들 보다 늙어 죽겠다며 둘째 사위는 육아휴직 쓸 수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겠다는 말로 부러움을 내비쳤다. 또 남편 깰까 봐 우는 아이를 한밤에 업고 나가 재웠다는 앞집 아주머니는 ‘육아를 위해 휴직한 아빠’의 팬이 됐고, 이래저래 마주치는 아저씨들은 일하느라 아이 가장 예쁠 때 함께 하지 못한 게 제일 후회가 된다고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몇 군데 되짚어보면 과연 “부럽다”는 바깥의 말이, 스스로 생각해도 어색하지 않다. 동네 병원에선 직원이 우리 부자를 먼저 알아보고 자동 접수해줄 정도고, 테이크아웃 김밥집 점원은 유모차 끌고 온 나를 발견하면 밖으로 뛰어나와 주문 받아 들어가고(유모차가 들어가기엔 약간 불편하다) 김밥 내주면서 신용카드를 받아 들고가 결제한 다음 영수증을 다시 밖으로 갖다 줄 정도다. 어디 이 뿐인가. 동네 편의점 사장은 ‘애 보느라 고생한다’며 커피 서비스를 남발하며 여차하면 외상도 해 줄 정도로 가까워졌고, 동네 부동산에서는 아들 짐이 늘지 않았느냐, 이 참에 한번 움직이라며(요즘 20평대~30평대 가격차가 크게 좁혀졌다고 한다) 팔을 걷고 나설 정도다. ‘육아휴직 아빠’가 아니었다면 기대하기 힘들었을 주변 배려들이다.

40도를 넘나들던 서른 시간을 하얀 머리로 보냈다. 이런 아들을 남의 손에 맡겨 놓고 출근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든든한 아빠 덕분에 아내는 이날 회식까지 하고 들어왔다. 권리에는 책임에 따른다지만 육아에서는 책임만 있을 뿐 권리는 없다.

밖에서는 이렇게 잘나가는 아빠지만, 안으로는 비루해진 면이 있다. 무노동무임금 원칙에 따라 수입은 사실상 제로(0)가 되고 모든 생활비를 아내가 감당하면서 생긴 경제적인 문제가 대표적이다. 용돈 받아서 생활하는 처지다 보니 갑갑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남자는 현금! 뭐 이런 거 있잖나) 아내는 ‘필요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긁으시라!’는 입장이지만 매달 카드청구서 세부 내역을 제출하고 사후 검증 받는 조건에서는 한계가 있다. 물론, 정부 출산 장려책의 하나로 지급되는 육아휴직급여가 있긴 하지만 이건 아들의 돈이다. 아내 몫이다.

카드 사용내역서를 일일이 체크하는 아내의 펜 끝을 보고 있노라면 판결 기다리는 죄인마냥 괜스레 위축된다. 엉뚱한 데 긁은 건 없는지, 뭐 책잡힐 거리는 없는지…. 이제는 좀 덤덤해졌지만 처음엔 ‘그냥 사람 사서 쓰지, 뭣 한다고 휴직해 이런 꼴을 당하나…’하는 생각에 조기복직 카드까지도 만지작거렸다. 경제적 능력 거세된 수컷들의 비감을 절절히 경험했다.

이 아빠아줌마의 경우 제대로만 쓴다면 사실상 한도 무제한의 카드를 아내가 인정해 주고 있는 덕분에, 비교적 육아에 전념하고 있지만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인색한 평가는 육아를 힘들게 한다. ‘평생 기억에 남을 시간들’이라고 강조하는 아내나, ‘피와 눈물이 필수’라는 거룩한 문구로 육아노동의 고통을 극복하라는 세상도 매한가지다. 인정 받기 위한 육아는 아니지만, 그 몇 단어로 위로 받기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제대로 된 보상 없어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건 일상에 깨알처럼 들어 있는 즐거움 덕분이다. 내가 언제 또 앞으로 아들과 물장구 치고 이렇게 머리를 해 줄 수 있을까.

육아휴직급여만 해도 그렇다. 한정된 재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긴 하겠지만 직장 없는 엄마들의 삯은 없는 셈이다. 전업주부들에 대한 처우는 그렇다 치자. 이 수당이 다니던 직장의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차등, 적게 벌던 사람에겐 조금, 많이 벌던 사람에겐 많이 지급되는 건 또 뭔가. 육아노동 강도가 소득에 따라 다르진 않을 터, 단순한 임금보전 정책을 ‘휴직급여’라고 하지 않고 ‘육아’ 휴직급여라고 이름 붙인 것 좀 오버한 대목이지 않나 싶다.

육아노동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고, 휴직 급여 적다고 칭얼대고 있는 것도 수 많은 아빠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인 줄 안다. 돈도 필요 없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도 필요 없다. 어린 내 자식 내가 직접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게 그 은행원의 바람이었던 것도 알고 있다.

“어이, 김과장, 정년도 늘었는데 그때까지 일만 할 꺼야? 그렇게 일만 해서야 원. 애들이 아빠 알아보긴 해? 말 안 통한다고 뒤에 가서 후회 말고 애들이랑 시간도 보내면서 쉬엄쉬엄 해. 어디 정년만 늘었어? 수명도 늘었잖아. 길게 보고 가자고. 김과장이 즐겁게 일해야 나도 즐겁지 허허허.” 이 아빠가 사장이면 이 멘트로 남직원들 무조건 육아휴직 시킨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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