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강한 개인이 살아남는다' 사회가 주입한 생존공식 따라 자기계발 몰두 합리화

입력
2014.11.20 04:40
0 0

삼수 끝에 대학에 들어간 장모(24)씨는 입학 후 자기계발서를 탐독하고, 청춘 특강을 찾아 다녔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상실감과 압박을 극복하기 위해, 뭔가 자기위안과 동기부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장씨는 ‘현대사회에서 외로움은 사치고, 혼자인 나를 사랑하며 자기계발에 몰두하다 보면 사랑과 성공은 절로 따라온다’는 에세이 내용에 공감했고, 특강에서 듣게 된 ‘성공한 아웃사이더’의 이야기에 솔깃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취업하고 청년사업가로 변신한 강연자들의 얘기는 장씨를 ‘아싸의 길’로 이끌기 충분했다. 남들은 친구들을 만날 때 그는 스펙을 쌓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짜릿한 성취감, 남들보다 앞서간다는 우월감 같은 걸 느꼈다.

하지만 장씨는 지금 이렇게 보낸 3년의 대학생활을 후회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며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는 동기들을 볼 때마다 허전함이 더 밀려온다. 장씨는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진심을 다해 축하해 줄 친구들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혼자 지냈던 3년은 내가 원했던 삶이라기 보다 아싸를 찬양하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지나간 것 같다”고 토로했다.

2030세대 사이에서 ‘자발적 아싸’가 유행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100%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보긴 힘들다. 압박감 속에 사회가 제시한 생존공식을 따르면서 ‘자발적 선택’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TV 프로그램들은 공동체에서 벗어난 삶을 미화하고 도구적 인간관계를 종용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 컨셉의 예능프로그램 ‘더 지니어스’시리즈는 경쟁을 기반으로 한 실리적 인간관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청춘들은 이런 문화를 소비하면서 무의식 중에 ‘아싸’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유현실 단국대 상담학과 교수는 “자기계발, 처세술 등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개인의 역량만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며 “집단이 해야 할 몫까지 개인이 감당하도록 조장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의 뿌리를 신자유주의에서 찾기도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탁월한 인간’이 최고의 선으로 간주되면서 인간관계 '따위'는 중요시되지 않고, 설령 맺더라도 도구적 관계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경쟁논리를 삶의 논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요즘의 아싸는 예전의 왕따와 달리 친목관계에는 소홀하지만 이익관계가 있는 모임에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아싸와 유사하지만 자조적인 개념인 ‘잉여(특별한 일이나 목표 없이 그저 남아도는 인간이란 뜻)’는 ‘도토리 키를 재봤자 어차피 도토리’라는 생각 때문에 경쟁도 인간관계도 하지 않고 외곽으로만 도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시 연대의식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유현실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혼자 헤쳐가려고 아등바등할 게 아니라, 더욱 긴밀한 인간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내 상담과 멘토링 시스템 등을 활용해 면대면 소통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택광 교수는 “홀로 강한 개인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식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이익 중심의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연대를 통해 성취감을 찾는 것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박혜리 인턴기자(경희대 사회학과 4)

강병조 인턴기자(한성대 영문학과 4)

현민지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3)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