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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입자 기술, 모호한 환경규제에 묶여 상용화 길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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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입자 기술, 모호한 환경규제에 묶여 상용화 길 막혀"

입력
2014.11.1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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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마다 규제 달라서… 신재생에너지 인허가 부처간 '뺑뺑이'

시장 못 보면 지원책도 규제로… 중기 R&D 인건비 지원 '그림의 떡'

정부, R&D제도 혁신안 마련 중… 상반기 21개 규제 선별해 개선 중, 하반기엔 337개 발굴해 검토

왼쪽부터 현재호 테크노베이션파트너스 대표이사, 문영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정보분석연구소장, 윤헌주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책국장,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감상선 멀티스케일 에너지시스템연구단 이사장.
왼쪽부터 현재호 테크노베이션파트너스 대표이사, 문영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정보분석연구소장, 윤헌주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책국장,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감상선 멀티스케일 에너지시스템연구단 이사장.

정부가 규제 개혁 칼을 빼든지 1년여가 지났다. 덕분에 자동차와 건설, 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제기된 불합리한 규제들이 조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의 아쉬움은 여전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창조경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기술사업화와 신시장 창출을 가로막는 과학기술 관련 규제를 지목하고 적극적으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3월 각계 전문가 10명을 ‘규제개선 옴부즈만’으로 위촉했다.

이들 가운데 4명이 미래부 당국자와 함께 14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일보 편집국에 모였다. 지난 8개월간 산ㆍ학ㆍ연 각계에서 활동하며 찾아낸 불합리한 규제들을 쏟아낸 옴부즈만들은 국민들이 바라는 ‘현실적인’ 규제 개혁의 방향도 제시했다.

이 부처 저 부처 따로 노는 규제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대규모로 투입한 덕에 상용화 가능한 수준까지 개발돼 있는 나노입자 기술이 여럿 있다. 나노입자는 환경규제물질로 분류돼 있어 공인기관에서 위험도 평가를 받아야 기업에 판매할 수 있다. 그런데 환경이나 인체에 유해한 입자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무슨 기관에서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이 불명확하다 보니 사실상 산업 현장에서 쓰이기가 어렵다. 시중에서 팔리는 외국산 자외선차단제 같은 제품엔 이미 나노입자가 일부 들어 있는데 말이다. 미국에서도 나노입자가 환경규제물질이지만, 크기와 형태 등의 기준을 세밀하게 규정해 놓았다.”

김상선 멀티스케일에너지시스템연구단 이사장: “같은 사안에 대해 부처 간 규제가 달라 기술사업화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국가 R&D 성과를 상용화하기 위해 설립된 기술지주회사가 산업통상자원부에선 ‘기술의 이전 및 사업화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펀드를 운용할 수 있고, 교육부에선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산학협력법)’에 근거해 펀드 운영이 불가능하다. 기술지주회사의 상당수는 대학이 설립하기 때문에 산학협력법 적용을 받는다. 조성한 펀드의 운용을 외부에 맡길 수밖에 없어 적시에 투자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가 되는 것이다. 미국에선 기술지주회사가 직접 투자회사를 운영하기도 한다.”

문영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정보분석연구소장: “신재생에너지 사업 인허가 과정도 개선이 필요하다. 기술을 보유한 사업자가 인허가를 받기 위해 산업부와 환경부, 산림청, 국방부 등을 돌아다니다 보면 3~5년이 훌쩍 지나간다. 시간적, 경제적 손실이 너무 커 현실적으로 사업화에 제약이 크다. 상ㆍ하위법뿐 아니라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규제는 패키지처럼 묶어 한번에 해결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박 교수: “국가 R&D 규모가 늘고 분야도 다양해지면서 좀더 가치 있는 원천기술을 찾기 위해 사전조사의 필요성이 커졌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기술선행조사 시장이 형성됐다. 그런데 시장이 커지면서 기술선행조사 업체 선정을 놓고 공정성 시비가 제기될 우려가 생기자 정부가 입찰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조사를 잘하는 업체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전문성이 다소 떨어지는 업체들이 비용을 낮춰 계속 기회를 얻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의 R&D 생산성(투자비 대비 기술료 수입)이 약 1.5%(2012년 기준)로 미국(2010년 기준 3.9%)에 비해 훨씬 낮은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시장 흐름 못 읽으면 지원책도 규제화

현재호 테크노베이션파트너스 대표이사: “정부의 개입이나 지원은 초기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시장 상황을 적절히 감지하지 못하면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이를테면 신약 후보물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시험 산업은 국내에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이 경쟁하는 구도다. 그런데 정부 지원을 받는 공공기관은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공정 경쟁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비슷한 문제를 겪은 미국은 최근 공공과 민간의 공정 경쟁을 보장하는 감시기구를 별도로 만들었다.”

박 교수: “중소기업 입장에선 규제로 여겨지는 제도들이 곳곳에 적지 않다. 가령 중소기업 인력난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부설 연구소를 갖고 있는 중소기업에 한해 R&D 인력의 인건비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다. 그런데 입사 전 1개월 동안 무직 상태여야 지원신청 자격이 되는 경우가 있다. 행정 편의적 발상이 아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취업난이 심각한데 정부지원 받자고 1개월 동안 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윤헌주 미래부 과학기술정책국장: “인건비 지원이나 기술선행조사 등은 규제 개혁보다는 제도 개선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효율성 향상을 위한 R&D 제도 혁신 방안을 올해 안에 마련할 예정이다. 개혁해야 할 규제의 좋은 예로 유기성 오니(汚泥ㆍ폐기물) 문제를 들 수 있다. 하수나 가축 분뇨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침전물인 유기성 오니는 화력발전소에선 연료로 쓰는데, 열병합발전소에선 전력 생산 방식이 비슷한데도 금지돼 있다. 일정 기준에 부합하는 유기성 오니를 열병합발전소에서도 연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전력과 온수 대체 생산이 가능해져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면서 폐기물 처리 비용 감소 효과까지 생길 것이다. ”

김 이사장: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제도 개선과 규제 개혁이 칼로 무 자르듯 명확한 구분은 어려운 측면이 있다. R&D 성과가 산업계로 확산되기 전까지는 절실히 필요했던 정부의 지원 제도가 민간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되레 규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대표: “규제에 대한 정의가 사회적으로 명확히 합의돼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제도든 규제든 기본적인 원칙은 하나다. 국민 세금으로 개발한 기술은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규제를 ‘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규제를 제대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R&D 성과를 상업화할 때 가장 큰 장벽 중 하나가 첫 번째 고객을 잡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무도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신기술의 사회 진입 장벽은 늘 높다. 공공부문이 첫 번째 고객이 됐을 경우 실패하거나 손해를 입더라도 큰 책임을 묻지 않는 제도나 규제를 만들면 신기술 확산이 좀더 수월해질 것이다.”

연구단지 주변에 기업 모이게 해야

문 소장: “국내 과학기술 관련 규제는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 등을 포함해 약 4,000건으로 파악된다. 이 중 59%가 제품 생산, 39%가 판매와 마케팅에 영향을 미친다. 기술개발 단계보다 산업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규제가 훨씬 많다는 얘기다.”

김 이사장: “대덕연구단지 주변에 기업이 많지 않은 현실이 이를 증명하는 듯하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선 대규모 연구단지 근처에 기술조사나 임상시험 업체처럼 R&D 서비스업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든다.”

현 대표: “R&D가 증가할수록 R&D 서비스업 시장이 성장하면서 고용 창출로 이어져야 하는데, 국내에선 이 길이 막혀 있다. R&D 서비스기업이 국가 R&D에 참여하는 활동을 연구 용역이 아닌 국가 지원으로 보고 여기서 얻은 실적을 매출이나 이윤으로 편성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는 점이 큰 걸림돌이다.”

윤 국장: “규제 개혁에 대해 현장에서 전문가들이 체감하는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의미 있는 자리였다. 여기 계신 옴부즈만과 민관 합동 ‘과학기술규제개선 추진위원회’, 온라인 ‘규제개선고’, 국민 모니터링단,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규제개혁센터 등을 통해 올 상반기 496개 규제가 발굴됐고, 이 가운데 시급성과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21개 규제를 선별해 개선 중이다. 이어 하반기에도 337개 규제를 새로 발굴해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 신기술이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고, 신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관련 규제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

현 대표: “넓은 관점에서 봐야 한다. 자잘한 민원성 규제 해결에 매달리다 보면 근본적, 획기적 개혁이 어렵다. 또 이해 관계자들에게서 애로점만 듣고 규제를 바꿔버리면 맞다 틀리다 논란도 생길 수 있다. 최근 외국에는 ‘규제과학’이라는 분야가 생겼다. 규제도 정확한 근거에 기반해 만들거나 바꿔야 한다는 취지다. 그래야 많은 사람이 수긍하는 영향력 있는 규제가 된다.”

정리=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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