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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질 당하더라도 끼워넣자" … 쪽지예산 파고들 구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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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질 당하더라도 끼워넣자" … 쪽지예산 파고들 구멍으로

입력
2014.11.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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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위 심의 실질적 권한 없어 예비심사서 증액 "통과… 통과"

"힘센 의원 외 살아남지 못하지만 지역에 노력했다는 것 보여 주기용"

17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 회의장 밖 복도에 관계기관 공무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17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 회의장 밖 복도에 관계기관 공무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어떻게든 예산 삭감을 막아라.”

예산안 심사의 최종 칼자루를 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옛 계수조정소위)가 이틀째 열린 17일 회의실 앞은 예년처럼 예산 담당 공무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여야가 한 목소리로 “올해 예산 심사에서는 쪽지 예산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회의장을 찾는 지역구 의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상임위 회의 중 시간을 냈다는 한 의원은 “지역 관련 사업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왔다”며 “한번 삭감되면 되살릴 방법이 없는데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에서 일단 밀어넣기 식으로 십 수 조원이 증액된 뒤, 예산안조정소위 심사에서 뭉텅이로 잘려나가는 ‘고무줄 예산 심사’의 악순환은 올해도 어김 없다. 올해 상임위에서 증액된 예산이 13조 5,690억원이다 보니, 이를 덜어내야 하는 예산안조정소위의 위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산안 법적 처리기한인 12월 1일까지 고작 2주 정도 남은 시일 동안 각 사업의 효율성을 따져 꼼꼼히 ‘칼질’하는 일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렵다. 수조원의 예산이 실세 의원들간 짧고 굵은 ‘파워 게임’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쪽지 예산’(지역구 민원성 예산)이 파고들 틈도 여기서 생긴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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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넣고 보자”…생색내기 전락한 상임위 심사

상임위가 실질적으로 예산 심사를 하지 못하고 민원성 예산 증액의 창구로 전락하고 만 것은 예산 심사의 실질적 권한이 예산안조정소위에 집중된 데다 의원들이 동료 의원이나 관련 부처와의 관계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예결위의 한 관계자는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회의록에 남는 데, 동료 의원의 예산을 삭감하자고 나설 의원이 있겠냐”며 “부처 예산도 괜히 삭감을 주장해 미움을 사기보단 민원을 들어주고 생색을 내는 게 앞으로를 위해서도 더 낫다”고 말했다. 4대강 등 정치적 이슈로 부각된 사안이 아니라면, 꼼꼼히 사업을 점검해 ‘예산 삭감’을 해봐야 되레 원성만 사게 된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지역구 의원들에게 사활이 걸린 활동이 지역 사업예산의 증액이다 보니 여야 할 것 없이 우선은 예산을 넣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지역구 출신의 한 초선 의원은 ?“예결특위라는 최종 관문에서 칼질을 당하더라도 상임위 심사과정에서 ‘찔러넣기’에 일단 성공하면 지역구에 돌아가서 할 말이 생기는 것 아니냐”고 되려 반문했다. 상임위에서 소규모 예산이라도 찔러넣는 데 성공하면 추후 ‘계속 사업’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심리도 작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기용 인천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국회의원은 지역 대표성 때문에 일단 예산 증액 부분만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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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에 수조원 좌우하는 ‘소위’… 틈새 파고드는 쪽지예산 ?

상임위의 ‘묻지마 증액’과 예산안 심사 부실은 결국 예산안조정소위의 막강하면서도 졸속적인 ‘칼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예산삭감 작업을 마친 뒤 소수만이 참여해서 증액을 결정하는 일명‘소소위’가 밀실에서 이뤄져 ‘부실 예산 심사’의 정점을 찍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예결위 간사와 기획재정부 제2차관 등만 참여하는 이 회의에서 예산안의 막판 조율이 이뤄지는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다. 이처럼 소수에 의해 좌우되는 ‘깜깜이 심사’ 때문에 지역구 의원들로서도 쪽지 예산을 들이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야는 올해‘쪽지 예산 근절’을 선언하면서 상임위나 예결위에서 이미 심사된 사업만 증액할 수 있도록 했다. 한번도 심사되지 않았던 사업이 최종 예산안에 갑자기 포함되는 것을 근절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상임위의 예산 증액 규모가 예년에 비해 올해 상대적으로 커진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란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많은 의원들이 예결위에 ‘서면질의’ 형태로 형식적인 심사자료를 밀어 넣은 경우가 많아 올해도 ‘쪽지예산 근절’은 공염불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예산조정소위의 공개 논의 및 예결위와 상임위의 역할 분리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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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걸린 예산 전쟁… 여야간 신경전도 가열

이날 열린 예산조정소위회의에서는 여야가 막말로 주고 받으며 힘겨루기를 벌여 향후 예산심사의 험로를 예고하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이춘석 의원이 기금안과 예산안 심사의 별도 심의를 주장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책상을 치며 “그만 하세요”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에 새정치연합 강창일 의원이 “왜 얘기하는데 시비를 걸고 그래? 저 ×× 깡패야. 어디서 책상을 쳐. 저런 양아치 같은”이라며 반발해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김 의원이 다시 “참 예의 바르시네요 욕설이나 하고. 어떻게 저런 양아치 같은 소리를 해”라고 다시 목소리를 높이며 일촉즉발 직전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결국 김 의원이 책상을 친 데 대해 사과하고, 강 의원이 자신의 발언에 사과하면서 파행은 가까스로 면했다. ?

이동현기자 nani@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임준섭기자 ljscogg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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