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지현이 발인식 날, 너무 슬퍼 먼 발치서 눈물만"

알림

"지현이 발인식 날, 너무 슬퍼 먼 발치서 눈물만"

입력
2014.11.14 04:40
0 0

120일 가까이 세월호 수색작업

"18년 일해왔지만 가장 힘들어, 산소중독 탓 하루 4시간도 못 자"

지현이 찾고 먼저 떠나 미안했는데, 수색 종료 수용한 유족들에 감동

몇 차례 설득 끝에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지난달 29일 세월호에서 수습된 안산 단원고 황지현(17) 양을 발견하고 시신을 인양했던 민간 잠수사 최광일(44)씨다.

지현양을 인양하고 그는 바로 진도 팽목항을 떠났다고 한다. 몸과 마음도 지친데다 아프리카 가나에서의 일자리가 오래 전부터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9명의 실종자도 같이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마지막까지 동료 잠수사들과 함께 못해서 미안하다”고 입을 연 최씨는 “최근 수색이 종료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짠했다”고 말했다. 특히 실종자 가족들이 “가장 중요한 것은 잠수사 분들의 안전”이라며 수색 종료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 받았다고 했다.

잠수사 경력 18년째인 최씨는“그 동안 수많은 수중 작업을 벌여왔지만 팽목항의 세월호 실종자 수색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물이 탁해 시야를 확보하지 못했고, 조류도 너무 셌다. 또 부식이 심해 선체가 무너져 내리는 등 잠수사들이 생명을 걸어야 했다.”

그는 지난 7월 10일 88수중 팀에 합류해 팽목항에 들어왔다. 하루 40~50분에서 많게는 1시간까지 세월호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4층 복도 진입을 못해 창문도 뚫고 가야 했고, 길을 내기 위해 물건을 치우는 작업 등이 반복됐다. 바지선까지 직접 찾아와 수색 상황을 지켜보는 실종자 가족들의 염원을 알기에 더 빨리, 더 많은 곳을 수색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각 층마다 붕괴 위험이 있는데다가 물속에서 돌아다니는 물건들이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몰라 조심해야 했다. 120일 가까이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단 한번도 하루 4시간 이상의 잠을 자보지 못했다. 물 속에서 산소 농도가 높은 공기를 공급 받으며 작업하다 보니 몸에 산소가 쌓이는 산소중독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행운아라고 했다. 당시 잠수사들의 최고 임무는 실종자를 찾는 것이었다. 7월 19일 식당칸에서 여성 조리사를 발견한 이후 102일만에 황양을 찾아낸 사람이 자신이고, 또 그 황양을 조심스럽게 인양해낸 것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세월호 참사 197일만에 수습된 황지현 양의 경기도 안산 단원고 교실에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지난 1일 세월호 참사 197일만에 수습된 황지현 양의 경기도 안산 단원고 교실에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조심스레 잠수사 철수 논의가 진행되고 있던 지난달 28일 그는 평소처럼 차가운 물 속으로 수색에 나섰다. 세월호 4층 중앙화장실 있는 데까지 들어간 그는 탁한 물 속에서 구명조끼가 비스듬히 보여 다가갔다. 사람 형체가 보여 만져 보니 물렁한 살 느낌이었다. “드디어 찾았구나.” 몸에서 찌릿 전기가 통하는 듯 감격적이었다.

인양까지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중앙통로에 뻘층이 40~50㎝ 두께로 쌓여있는 데다 황양의 시신이 불어있어 어려움이 컸다. 탁한 시야에 거센 조류 등 최악의 조건이었다.

자칫 시신을 훼손할 수 있어 쉽게 손을 대지 못했다. 조심스레 사체포로 시신을 감싸는 데만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인양 도중에도 너무 급속히 물에서 올라가다 수압 차로 인해 훼손될 수 있어 시신에 2㎏자리 추를 15개나 매달아야 했다. 그렇게 꼬박 이틀간의 작업을 거쳐 황양을 물 밖으로 건져 올렸다.

황양의 시신과 함께 팽목항으로 나온 그는 짐을 싸 인천의 집으로 향했다. 잠을 뒤척이며 한밤중 팽목항 부두를 거닐 때나, 수색을 마치고 바지선 위에서 멍하니 몸을 쉬고 있을 때면 집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이 간절했다. 황양을 찾은 기쁨과 함께 이제 더는 물 속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또 가나에서의 일 때문에 몸도 추스려야 했다.

지난 1일 오전 그는 지현 양의 발인이 진행되는 안산 고려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차마 영정 앞에까지 갈 수 없어 먼 발치로만 발인을 지켜봤다.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지현이가 제게 처음 모습을 보여줬다. 지현이와의 짧지만 깊은 인연 때문인지 너무나 슬펐고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집에서 푹 쉬었지만 잠수병은 쉬 낫지 않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지만 최씨는 이틀 후면 한국을 떠난다. 3개월 일정으로 가나 해상 토목공사 현장에서 필요한 수중작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는 “혼자 먼저 떠나 남은 잠수사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수색이 종료돼 집으로 돌아가게 된 잠수사들의 건강을 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진도=박경우기자 gw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