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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좀 적어도 노후보장 굳게 믿고 공직 생활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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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좀 적어도 노후보장 굳게 믿고 공직 생활했는데…"

입력
2014.11.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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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사기 뿌리부터 흔들, 공무원 70% "민간보다 노후 유리"

구체적 정보 공개 없어… 정부·여당, 시한만 정하고 밀어붙여

12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하후상박 공무원연금 개정추진, 이대로 좋은가?'란 주제로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실이 주관하고 경찰공무원노동조합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여당의 공무원연금 개정안에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하후상박 공무원연금 개정추진, 이대로 좋은가?'란 주제로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실이 주관하고 경찰공무원노동조합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여당의 공무원연금 개정안에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충청권의 지방직 6급 공무원 이모(47)씨. 소규모 유아복 회사에 다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뒤늦게 공직에 들어온 이씨는 요즘 어느 때보다 착잡하다. 이씨는 12일 “공무원 월급이 턱없이 적다는 것은 이미 알고 들어왔지만 연금이 있으니 노후에 최소한 생활은 유지하겠다 싶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어렵게 된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이씨는 “지금대로라면 퇴직 후 첫 연금으로 140만원 받게 되는데 개혁안을 적용하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떨어질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개혁 바람이 불지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노후보장 안 되면 공무원 왜 하나”

공무원연금 개혁이 몰고 온 불안감은 공무원들의 사기를 뿌리부터 흔들 정도다. 2013년 한국행정연구원이 1,5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공무원인식조사를 보면 공무원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신분보장’(31.3%)과 ‘연금 등 노후보장’(19.6%)이다. 공무원들은 보수는 민간보다 낮지만(89.5%), 노후생활이 민간보다 유리하다(69.3%)고 생각했다. 이렇듯 공무원의 강력한 장점으로 꼽혀온 노후보장이 무너진다면 공무원직에 대한 의미를 잃게 되는 셈이다.

특히 경찰, 소방 등 근무조건이 열악하고 위험한 특정직 공무원들의 박탈감이 심하다. 서울 한 경찰서에 근무하는 윤모(46) 경위는 “경찰관이나 소방관은 일반직이나 교육직 공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은 낮으면서도 훨씬 더 혹독한 근무환경에 놓여있다”며 “이를 버티게 하는 것이 연금인데 이게 없어지면 더 이상 직을 유지할 이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했다.

개혁안에 따라 내 연금이 얼마가 될지 정확히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불안감을 더 부추긴다. 통계청에서 연금 담당자로 근무하는 5급 공무원 전모(52)씨는 최근 직원들로부터 “개혁안이 통과되면 도대체 내 연금이 얼마나 깎이느냐”는 물음을 부쩍 자주 받는다. 지난 9월 연금학회안을 시작으로 최근 새누리당안까지 개혁안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진데다 시뮬레이션을 통한 연금 변동 추계 등 정확한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아 전씨 자신도 연금을 계산하기가 역부족이다. 전씨는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는 속도를 내고 있는데 정작 공무원 본인들은 합리적인 궁금증조차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각각의 개혁안을 적용했을 때 개인별 연금 변동액을 알 수 있게 해달라고 안전행정부에 요구했지만 답이 없다”고 말했다.

논의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이 국민연금과 비교해 월등히 수령액이 높다며 공무원들을 ‘세금 도둑’으로 몰아세운 것도 공무원들을 자극했다. 서울시에 근무하는 한 고위 공무원은 “공무원연금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정부가 앞장서 공무원 집단을 ‘세금 도둑’으로 몰아세우다 보니 국민과 공무원 사이에 대립이 생겼다”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에 대한 비판으로 가뜩이나 사기가 떨어져 있는데 공무원을 점점 더 궁지로 몰아가니 공직자로서 자괴감까지 느낀다”고 털어놨다.

불안감 키우는 개혁논의 과정

더 내고 덜 받는 식의 연금 개혁 자체가 공무원들에게 반가울 리 없지만 일방통행식 논의 과정도 문제가 많다. 새누리당은 연말까지 개혁을 끝내겠다는 시한을 정해놓고 밀어붙이고 있다. 안행부도 홈페이지를 구축해 모든 정보를 의혹 없이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공개된 정부의 개혁안,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자료만 올라와 있을 뿐이다. 연금 개혁의 근거나 직급별 연금수령액, 기금이 어떻게 운용됐고 고갈됐는지 등 민감한 자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득권을 포기하라고 하면서도 이에 합당한 논의나 설득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서 “가령 사회보장제도를 설계하면서 수급개시 연령과 정년을 일치시키는 것이 상식인데 연금개시일을 65세로 연장하는 개혁안을 만들어 놓고 정년 연장 이야기는 없으니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혁 논의가 공무원들의 불안감은 최소화하면서 목표인 재정절감효과는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현재 개혁방식은 정반대”라고 꼬집었다.

공무원들의 불안과 반발이 심할수록 유능한 인재가 모이지 않고, 사적으로 노후대책을 마련하느라 본연의 공직서비스에 전념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심익섭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직사회 전반이 의기소침해질 때 무사안일이라든가 부정부패가 나타나게 된다”며 “장기적으로 국정 운영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개혁안이 통과된 후 퇴직수당이나 임금 인상으로 이어져 연금 개혁의 재정절감 효과를 반감시킬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엄살이 아닌 ‘실체가 있는 불안’으로 인정하고 공무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권문일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과 달리 공무원들은 60년 이상 공무원연금제도를 유지하면서 오랜 기간 혜택을 경험했기 때문에 연금에 대한 기대와 의존이 높다”면서 “노후를 위한 대비를 못한 하위직 공무원일수록 노후 빈곤의 문제가 크게 다가와 불안 정도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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