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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vs SK, 충청의 주도권 놓고 신경전?

입력
2014.11.1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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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선거에서는 충청권을 잡아야 이긴다’는 말은 정설입니다. 남한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상징성에다, 영호남으로 정치색이 뚜렷하게 나뉘다 보니 결국 지역색이 덜한 충청권의 표를 많이 얻어야 전국적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은 선거 때마다 ‘중원혈투(中原血鬪)’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충청권 주도권 다툼을 예의주시하곤 합니다.

그런데 요즘 재계에서도 SK그룹과 한화그룹이 충청권 주도권을 놓고 흥미로운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내 대전창조경제 혁신센터 확대출범식을 마친 뒤 SK그룹의 CEO들과 함께 우수기업 전시관에서 드림벤쳐스타로 발굴된 젊은 기업가들과 얘기하다 환하게 웃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내 대전창조경제 혁신센터 확대출범식을 마친 뒤 SK그룹의 CEO들과 함께 우수기업 전시관에서 드림벤쳐스타로 발굴된 젊은 기업가들과 얘기하다 환하게 웃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최근 SK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앞세워 충청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요. 주요 대기업들이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 별로 나뉘어 지자체와 손잡고 기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확대하거나 새로 짓기로 했습니다. 삼성은 대구, 현대차는 광주, 롯데는 부산, KT는 경기를 맡는 식인데요. SK는 대전과 세종시를 맡게 된 것입니다. SK는 지난달 10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전의 ‘창조경제혁신센터’ 확대 출범식과 세종시 ‘창조마을’ 출범식을 잇따라 열며 바람몰이에 나섰습니다. 앞서 대구에서 비슷한 행사를 연 삼성에 이어 두번째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SK는 지난주 그룹 최고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아래 하성민 SK텔레콤 대표를 단장으로 ‘창조경제혁신단’을 만들고, 주요 계열사 CEO들이 직접 혁신센터 지원에 나서는 등 가장 열심히 창조경제혁신센터 성공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SK의 이런 적극적 행보를 최태원 회장의 사면 또는 가석방과 연관시키려는 시각이 없지 않습니다. 올 9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불법 수익은 모두 환원하는 등 가석방 요건을 충족하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에 공헌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할 것”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긴 했지만 “기업인도 요건만 갖춘다면 가석방될 수 있다”는 발언한 이후 그 동안 기업인들을 강하게 몰아붙였던 박근혜 정부가 태도를 바꾼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면서 사면 가능성에 대한 말들이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수감 650일을 넘긴 최 회장에 대한 사면이나 가석방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공을 들이는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는데요. 이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설치됐고 정부도 가장 먼저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으로 꼽은 두 곳이 대구와 대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구는 삼성이 사업을 일으킨 지역이라 연관이 깊다고 할 수 있지만, 대전은 SK와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도 SK가 이 지역을 맡은 것도 빨리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정부와 함께 이 사업을 추진 중인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대전과 세종시에서 하려는 사업의 성격이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것들이라 이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SK쪽과 손을 잡았다”며 “정치적 배려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SK그룹 관계자도 “주요기업들이 다 하는 사업에 참여해 좀 더 빨리 열심히 하려는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세종시 부강면에 위치한 한화첨단소재 세종사업장 전경. 한화첨단소재 제공
세종시 부강면에 위치한 한화첨단소재 세종사업장 전경. 한화첨단소재 제공

그런데 한화는 이런 SK의 행보가 적지 않게 신경 쓰이는 모습입니다. 국내 대기업 중 충청과 가장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 것이 한화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전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팀 한화이글스를 운영하고 있고, 김승연 회장의 고향도 충남입니다. 그리고 한화 역시 창조경제혁신센터 관련 사업을 하기로 했는데, 그 대상 지역이 바로 충남입니다.

하지만 한화그룹은 지금 혁신센터 사업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충남에 바로 붙어있는 대전, 세종시에서 SK가 혁신센터 관련 사업을 워낙 빠르게 진행하는 것도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인 것만은 틀림 없습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천안이나 아산 쪽에 센터 마련을 고민하고 있지만 시점을 언제쯤으로 해야 할 지 쉽게 결론을 못 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SK의 신속한 행보가 신경 쓰인다는 뜻으로 읽혀집니다. 대신 한화는 지난주 세종시에 주요 계열사에 꼽히는 한화첨단소재의 본사를 옮기기로 하면서 충청에 대한 애정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첨단소재의 주요 생산 공장이 세종시와 충북 음성에 있기 때문에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충청의 기업으로 충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뜻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방의 발전을 위해 대기업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시도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라면, 더구나 그 결과가 생색내기에 그친다면 그보다 큰 낭비가 없습니다. 충청을 두고 펼쳐지는 SK와 한화의 선의의 경쟁은 부디 좋은 선례로 남길 바랍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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