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주택 1층에 살던 독거노인 최모(68)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최씨는 "고맙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라. 개의치 말라"고 적힌 봉투와 10만원 가량의 현금을 남겨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제공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 최근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말이었다. 얼마 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주택 1층에 세 들어 살던 60대 독거노인 최모 씨가 집이 팔려 나가게 되자 장례비 등을 놓아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말이었다. 최씨는 수고할 경찰에게 남긴 국밥값 10만원, 장례비 100여만 원, 전기ㆍ수도요금 고지서와 이에 해당하는 금액을 남겼다고 한다. 모든 돈이 빳빳한 신권이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욱 시리게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8.1%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어르신 두 분 중 한 분은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빈곤의 위험에 처해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노인 빈곤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고, 당분간 노후복지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독거노인이 나의 미래가 아니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도 노후복지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것을 증거한다.

노후복지만이 문제가 아니다. 무상급식과 누리과정(만 3~5세 아동보육비 지원 사업)의 교육복지 예산을 두고 정부와 지자체, 교육청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진보 성향의 교육청은 무상급식을 중시하고, 보수 성향의 정부와 지자체는 무상보육을 우선시한다. 두 정책 모두 추진되면 좋으련만, 문제는 역시 돈이다. 국고 지원은 줄고 지자체 재정자립도는 낮은 현실이 새삼 무상복지 논쟁을 달구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기초연금 실시로 인한 재정 압박 또한 더욱 커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게 증대해온 복지 요구를 줄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생각해보라. 어제까지 지급된 복지 혜택을 거둬들인다면, 이를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복지는 이미 모든 세대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30대에겐 무상보육이, 40, 50대에겐 무상급식이, 그리고 60대 이상에겐 기초연금이 생활의 기본조건을 이룬다. 이 중 어느 게 더 중요하다고 누가 쉽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우선순위를 고려하면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두고 추진해온 무상급식을 먼저 배려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무상보육의 필요성을 무시할 수도 없다.

복지국가 구축은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합의한 국민적 약속이다. 사회 양극화를 제어하기 위해 시장 안의 일자리 창출과 시장 밖의 복지 강화에 주력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일차적인 과제다. 복지국가 구축이라는 연옥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선진국이라는 천국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규제개혁, 일자리 창출, 성장 동력 확충은 국가적 과제다. 동시에 이와 별도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복지정책 강화 역시 엄중한 시대적 요구다.

정치사회에 바란다. 지금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가운데 어느 것을 우선시해야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모든 세대가 국민인 이상 둘 다 중요하다. 자신이 주도한 의제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정부와 여야를 포함한 정치사회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복지 강화를 위한 재정정책의 혁신이다. 세입과 세출의 합리화를 통한 복지 재정의 확보는 현재 진행되는 복지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복지국가는 ‘경제적 교환’이라기보다 ‘정치적 교환’이다. 다시 말해 정치세력들 간의 ‘역사적 타협’이 복지국가로 가는 기본 조건이다. 정치사회는 이 문제를 크게, 그리고 깊게 봐야 한다. OECD 평균 수준으로 사회복지를 이끌어 올리는 전통적 복지국가 구축과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는 새로운 복지국가 추구라는 이중적 과제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재정 건전성이라는 경제의 지속가능성과 양극화 해소라는 사회의 지속가능성 간의 접점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복지국가가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이라면 정치사회는 문제의 본질을 회피해선 안 된다.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선 증세라는 봉인된 상자를 열어야 할, 그것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우리 사회는 이미 도달해 있다. 우회로는 없다. 증세 없이 복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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