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독일 벨트문학상 수상 연설

베를린 장벽 붕괴 돌이켜보며

"폭력적이고 냉소적 현실 앞에서 더 자유로운 세계 위해 노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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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5). 연합뉴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5)가 7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벨트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비록 벽에 갇혔어도 장벽 없는 세계를 이야기는 할 수 있다”며 “바로 지금 벽과 싸우고 있는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루키는 이날 연설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25년을 돌이키며 “우리를 지키기 위해 타자를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벽의 논리”라며 “베를린 장벽이 바로 그 전형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누구라도 상상할 힘을 가지고 있다”며 “폭력적이고 냉소적인 현실 앞에서 연약하고 부질없는 희망으로 보일지라도 꺾이지 않고 더 나은 더 자유로운 세계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벨트문학상은 독일의 보수 성향 유력지 디 벨트가 1999년 제정한 상으로, 지금까지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 등 여러 유명 작가들이 받았다. 일본 소설가 수상은 하루키가 처음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에 오르는 하루키가 5년 전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을 전후한 시점 이후로 이처럼 정치ㆍ사회문제에 대한 발언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도 눈길이 간다. 아래는 교도통신이 전한 하루키 연설 요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25년이 지났습니다. 내가 처음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1983년) 거리는 그 숨막히게 하는 장벽으로 동과 서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여행자로 온)우리들은 동베를린에 갈 수 있었지만, 검문소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됐고 자정 전에 서베를린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마치 무도회에 간 신데렐라처럼.

동베를린의 오페라하우스에 아내와 친구들과 모차르트의 ‘마적’을 들으러 갔습니다. 음악과 오페라하우스의 분위기는 훌륭했습니다. 시침이 자정에 가까워오자 검문소를 향해 돌아오는 길에서 허겁지겁 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서도 가장 스릴 넘치고 흥분되는 ‘마적’이었습니다.

그 다음 베를린에 왔을 때 장벽은 이미 없어지고 세계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 보였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을 때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 내린 기억이 납니다. “냉전이 끝났다”고 혼자 말했습니다. “세계는 더욱 더 평화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똑같이 느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안도의 느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중동에서는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발칸반도에서는 전쟁이 일어났으며, 테러사건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에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공격이 있었습니다. 더 행복한 세계를 향한 우리들의 희망은 무너져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소설가인 저에게 장벽은 항상 중요한 모티프입니다.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는 높은 벽에 둘러싸여 갇힌 가공의 마을을 묘사했습니다. 일단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그런 마을입니다. 소설 ‘태엽 감는 새’의 주인공은 우물 바닥에 앉아 두터운 돌벽을 통과해서 다른 세계로 갑니다. 2009년에 (이스라엘의 문학상인)예루살렘상을 받을 때 저는 예루살렘에서 ‘벽과 알’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습니다. 벽과 거기에 부딪혀 깨지는 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돌벽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무력한가. 제가 연설을 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도 (팔레스타인 자치지역)가자에서는 격렬한 충돌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제게 벽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 하나의 가치관과 다른 가치관을 떼어놓은 것의 상징입니다. 벽은 우리들을 지켜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타자를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벽의 논리입니다. 벽은 결국 다른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정된 시스템이 됩니다. 때로는 폭력을 동반해서. 베를린 장벽은 바로 그 전형이었습니다.

세계에는 많은 종류의 벽이 있습니다. 민족, 종교, 불관용, 원리주의, 탐욕, 그리고 불안과 같은 벽입니다. 우리들은 벽이라는 시스템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것일까요. 소설가에게 벽은 맞서서 부수지 않으면 안 되는 장애물입니다. 예를 들자면 소설을 쓸 때에는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을 나누는 벽을 뚫고 나아갑니다. 반대쪽에 있는 세계를 보고 자신들 쪽으로 되돌아와 본 것을 작품으로 자세히 묘사합니다. 그것이 우리들 소설가가 매일 하고 있는 일입니다.

픽션을 읽고 깊이 감동해 흥분할 때 그 사람은 작가와 함께 벽을 뚫고 나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책을 다 읽어도 물론 기본적으로는 읽기 시작했을 때와 같은 장소에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변함이 없고 실제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습니다. 그래도 분명히 어딘가로 갔다 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정말 짧은 거리, 10㎝에서 20㎝이어도 처음 장소와는 다른 곳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됩니다. 책을 읽는 데는 그런 감각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나는 자유로워서 꿈을 꾼다면 벽을 뚫고 나아가 어디라도 원하는 장소로 갈 수도 있다는 그런 실제 감각입니다. 저는 그것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런 감각을 가져올 수 있는 이야기를 되도록 많이 쓰고, 그 훌륭한 감각을 가능한 한 많은 독자와 나누고 싶습니다.

존 레논이 노래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누구라도 상상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폭력적이고 냉소적인 현실 앞에서, 그것은 연약하고 부질없는 희망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꺾이지 않고 더 나은 더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야기해 가는 차분하면서도 긴 호흡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상상하는 힘은 그 과정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설사 벽에 갇혀 있어도 벽이 없는 세계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세계는 자신의 눈에 보일 것이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무언가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2014년 이곳 베를린은 그런 힘을 한 번 더 생각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바로 지금 벽과 싸우고 있는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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