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에게 ‘별도의 일감’으로 부과돼

스트레스ㆍ우울증 등 사회적 비용 급증

정신ㆍ육체 이어 ‘제3노동’으로 다뤄야

자주 들르는 식당에서 액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손님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릴 정도니 종업원들은 눈코 뜰 새 없다. 한쪽 벽면에 걸린 액자에는 큼지막하게 ‘웃자! 웃자! 웃자!’라고 씌어 있다. 걸려있는 위치나 말투로 보아 손님보다는 종업원들 보라고 주인이 붙여놓은 듯하다. 흔히 보는 ‘손님은 왕이다’는 구호도 같은 맥락에서 ‘왕으로 모시겠습니다’는 다짐이라기보다 ‘왕으로 모셔라’는 지시에 더 가깝다.

감정을 숨기고 억누른 채 회사나 조직의 입장에 따라 말투나 표정 몸짓 등을 연기하는 일이 수반되는 노동이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다. 서비스업 종사자가 늘어나면서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일반화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에 따르면 한국의 감정노동자는 800만~1,000만명에 이른다. 감정노동 강도가 높은 직업으로는 항공기승무원, 홍보도우미, 식당종업원(패스트푸드점원), 검표원 등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갑을(甲乙)문화’를 감안하면 거의 모든 사회인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감정노동을 ‘별도의 일감’으로 떠안고 근무하고 있다.

인권의식에 상대적으로 일찍 눈을 뜬 서양에서는 1980, 90년대부터 감정노동 문제가 대두됐지만 우리의 경우 불과 몇 년 전부터다. 지난해 이른바 ‘컵라면 상무와 항공기승무원’ 사건을 계기로 관심이 새로 불거졌고, 최근 청소년 알바들의 인권침해와 스트레스 문제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아파트경비원이나 전화상담원 등 감정노동자의 자살소동도 툭툭 불거지고 있다. 그만큼 사회적 비용손실도 크게 늘고 있다.

우리 국회에는 이른바 ‘감정노동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이미 발의돼 있다.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이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개정하여 대책을 마련하자는 내용이다. ‘우리 근로자들의 대부분이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울증 등 질병을 앓거나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특히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경우 고객으로부터 불쾌한 언행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고 법개정 취지를 설명한다. 근로자 보건조치에 ‘고객 등의 폭언 폭행 또는 무리한 요구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건강상해’를 포함시키고, ‘근로자의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는 행위를 못하도록 요청하는 문구를 고객이 보기 쉬운 곳에 게시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자는 내용이다. 이를 게을리하는 사업주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토록 하고 있다.

개정안의 취지에 적극 동의한다. 한편으로 감정노동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다뤄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감정노동자의 건강을 우려하고 고객의 선의를 촉구하는 수준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감정노동을 하나의 독립된 노동으로 인정하여 노동자와 고객이 떳떳하게 노동력을 주고받는 형태로 가꿔가는 것이다. 육체노동 정신노동과 함께 감정노동을 제3의 근로형태로 독립시키고 이에 상응한 인식과 처우를 제도화 하자는 얘기다.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일찌감치 감정노동이란 용어를 써서 감정이 노동과 상품의 영역임을 주장한 앨리 러셀 훅실드 교수(미 버클리대학)의 설명이 흥미롭다. 감정이 성공적으로 상업화한 상황에서는 노동자가 거짓이라는 느낌이나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노동자는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실제로 얼마나 인간적인지에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모 항공사 광고문구에 “우리의 미소는 그냥 그려놓은 것이 아닙니다”는 표현이 있다. 이 항공사에서는 자사 승무원들의 미소는 월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웃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인간적이라고 광고한다. 이 광고는 노동자를 자신의 (제조된)미소에서 분리시키는 한편 고객들에게는 ‘이 행위가 직업적 프로정신에 입각해 계산된 것임’을 확신하게 만든다. …웃는 척하고 있지만 스스로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겠다는 의미다. [저서‘감정노동(EMOTIONAL LABOR)’ 중에서]

감정을 독립된 근로로 인정하고, 직업적으로 상업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서구사회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해 보인다. 그렇게 된다면, 전화 너머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란 말을 듣고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며, 종업원을 하인처럼, 승무원을 종처럼 여기는 일도 점차 사라져 갈 듯하다.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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