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씨

일본·오스트리아 유학 생활...콩쿠르 꾸준히 도전하며 외로움 견뎌

독창적 운지법 이용한 레가토로 정평...내년 초 공연으로 국내 활동 시작

박규희씨가 프랑스의 기타 장인 다니엘 프레드리히가 2009년 선물한 기타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한주형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3)

“제 경력이요? 20년은 훨씬 넘죠. 세 살부터 했으니…”

최근 7집 ‘사우다지(Saudadeㆍ향수)’를 발표, 오스트리아 빈 생활을 접고 잠시 고국에 들른 기타리스트 박규희(30)씨의 앳된 얼굴 아래 퇴적돼 있는 시간의 층은 두텁다. 한국과 일본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며 다져진 기타 실력으로 일본 기타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그가 고국에서의 본격 활동을 가늠하고 있다.

태어나서 가족과 함께 5살 때까지 일본에 살던 그는 10대에 한국 생활을 하다 15세에 다시 일본으로 갔다. 22살부터는 빈 국립음대 현악과에서 기타를 전공, 2년의 과정 석사에 들어갔다. 잦은 전학 끝에 인천 대화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줄곧 외국서 생활한 그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기타다.

취미로 기타를 치던 어머니 덕분에 3살 때부터 유아용 기타와 놀았다. 클래식 기타 작곡가 타레가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 그 무렵이다. 6살 때 타레가의 연습곡 ‘눈물’를 연주하더니 그의 상징 같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초등학교 2학년 때 2년 동안 연습해 완주했다. 예원중 2학년 때 한국기타협회의 콩쿠르 우승 기념으로 문화일보홀에서 첫 공식 연주를 가졌다. 당시로는 최연소 기타 콘서트였다. 너무 떨어 걸음걸이가 이상할 정도였으나 일단 자세를 취하자 ‘마술피리’ ‘대성당’ 같은 곡이 물 흐르듯 나왔다.

“막상 연주곡은 배짱 있게 더 잘 쳤죠.” 천상 무대 체질이라기보다 매일 6시간씩의 연습이 낳은 결과였다.

중학교 3학년 때 가족과 일본으로 이민 간 그는 재일교포 기타 주자 김용태씨에게 개인 레슨을 받은 뒤 일본의 클래식 기타 거장 후쿠다 신이치(福田進一)에게 배우는 행운을 누렸다. 동경음대 1학년 때 ‘리히텐슈타인 기타 페스티벌’의 콩쿠르에서 3등을 차지한 그는 2007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겨 국립음대를 택했고 지금 석사 1학년이다. 2011년 이후 일본의 클래식 매니지먼트사 ‘콘서트 이마진’소속 아티스트로 있는 그는 매년 일본 중소 도시에서 한 달에 5, 6개의 공연을 치러내는 몹시 바쁜 아티스트다. 일본 이외의 지역은 한국의 기획사 '뮤직&아트 컴퍼니'와 상의한다.

그는 해외에서의 고독감을 잊는 데 연습이 특효라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꾸준히 콩쿠르에 도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2007년 독일 한스베르크 국제기타콩쿠르에서 우승한 이래 2008~2009년 벨기에 ‘프랭탕’, 빈 국제 기타 콩쿠르 등 메이저급 대회에서만 한 해 서너 개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음과 음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레가토’ 표현에서는 따를만한 자가 없다는 정평이 나 있다. 자신만의 레가토를 개발하기 위해 그는 독창적 운지법도 개발했다.

지금까지 7장의 음반을 발표한 그는 내년 3월 LG아트센터 공연을 기점으로 한국에서의 활동을 본격 시작할 요량이다.

“1,000석이 넘는 홀에서의 공연은 처음이에요. 정말 잘 할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개발해 보다 완벽하게 해 보일 거에요.”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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