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사회부 기자

11일 만이었다. 지난 12일 세 번째로 만난 세월호 유가족 김종호(53)씨의 얼굴은 두 번째 만났을 때보다 더 초췌해 보였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전골냄비를 가운데 두고 그는 연신 소주잔을 기울였다. 손수 국물을 떠주며 김씨는 “회식 때 술 많이 마시지 마라” “날씨 많이 추워졌는데 감기 조심하라”며 기자를 자식처럼 챙겼다. 말끝마다 “아버지가”라는 단어가 붙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2학년 3반 고 김영은 학생의 아버지다.

세월호 참사 6개월 기획 취재 때문에 오후 6시에는 안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목포행 버스를 타야 했다.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김씨는 그런 기자를 기어코 배웅해주겠다며 함께 식당을 나섰다. 기자의 짐을 버스에 실어준 그는 한사코 마다하는데도 구겨진 쌈짓돈을 쥐어주고 나서야 도망치듯 돌아섰다. “아버지가 영은이에게 못 해줬던 게 마음에 걸려 주는 거야.” 버스에 오른 지 10분, 김씨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평생 딸처럼 생각해도 되겠니.’ 차창 밖 야경이 흐려졌다. “지금도 우리 영은이가 재잘대면서 들어올 거 같다”며 흐느끼던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반 년이 다되가지만 아직 남은 실종자 10명은 바닷 속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진도 팽목항에는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한 꽃다발은 시들었지만 이들을 기리기 위한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연합뉴스

취재를 하다 보면 ‘세월호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어난 것을 체감한다. “이제 그만 좀 하라”는 분위기 속에 일부는 유가족들의 단식투쟁을 조롱하듯 폭식투쟁을 벌이거나 일베충(극보수성향 인터넷 게시판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을 비하하는 말)에 빗대 유가족을 “유족충”이라고 부르길 서슴지 않는다. 유가족 대책위 지도부의 대리기사 폭행사건까지 터지고 나자 세월호 사고는 정치적 공방이 난무하는 난전이 돼 버렸다. 그 난전을 취재하던 기자는 김씨를 만나 오랜만에 본질로 돌아왔다.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04명의 무고한 승객이 수장된 대참사로 생떼 같은 아들 딸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가족들의 슬픔, 그게 본질이다.

유가족들은 처음부터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피붙이가 희생돼야 했던 진상을 명백히 규명해달라는 요구뿐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이슈가 정치적으로 얼룩진 지금, 그들은 행동 하나하나 남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답답한 상황에 처했다. 아무 잘못도 없이 죄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나 가혹하다. 그리운 딸의 모습을 스치듯 만난 기자에게서라도 찾고 싶은 아버지의 슬픈 모습을 정치권과 국민들이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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