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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세월 견뎌보지만… 유족들은 오늘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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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세월 견뎌보지만… 유족들은 오늘도 '4월 16일'

입력
2014.10.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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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물고 일상 찾으려 발버둥쳐도 '빈자리'에 대한 죄책감·그리움만

20년 넘게 운영한 가게 정리하기도, 납골당 찾아가는 게 유일한 외출

세월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숨진 방현수씨의 아버지 기삼씨가 14일 인천 남동구 자택에서 아들의 영정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옆에 있던 어머니 김지숙씨는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인천=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세월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숨진 방현수씨의 아버지 기삼씨가 14일 인천 남동구 자택에서 아들의 영정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옆에 있던 어머니 김지숙씨는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인천=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보고 싶어요, 내 새끼. 지난 6개월도 지옥 같았는데 앞으로 수십년 세월을 어찌 살아내야 할까요.” 방기삼(50)씨 부부는 눈만 감아도 세월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변을 당한 아들 현수(21)씨가 떠오른다고 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침몰하는 배를 멀쩡히 지켜보면서도 아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은 눈곱만큼도 덜어지지 않았다. 배 안 어딘가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쳤을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부터 목구멍까지 불덩이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른다. 이들에겐 매일이 4월 16일이다.

어떻게든 이 악물고 바쁘게 살아보자 숱하게 다짐했건만, 수시로 떠오르는 아들 생각은 이들 부부에게 평온한 일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방씨 부부는 결국 20년 넘게 운영하던 인천의 작은 횟집을 정리했다. 방씨는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제가 물고기를 너무 많이 죽여서 바다가 아들을 데려간 걸까요?”

16일로 세월호 참사 6개월을 맞았다. 유가족들은 온몸으로 그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가족의 빈자리는 실로 컸다. 먹고 살기 위해 또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바쁜 일상을 일부러 찾으려 발버둥 치는 순간에도 다시 만날 수 없는 피붙이에 대한 그리움은 유가족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방씨는 “희망이 없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압축했다. 송도 근처 바닷가에서 낚싯대 하나 펴놓고 시간을 보내는 게 그의 일과다. 아내 김지숙(51)씨는 하루 종일 아들의 방에서 영정사진에 눈을 맞추고 현수씨의 옷을 꺼내 체취로나마 아들을 기억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나마 집에서 걸어 1시간 거리에 있는 아들의 납골당을 찾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라고 했다. 방씨는 “울기만 하는 아내의 퉁퉁 부은 눈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괴로워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떠오르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원고 2학년 3반 고 김영은양의 아버지 김종호(53)씨는 “참사 전만 해도 내가 퇴근하고 20분쯤 지나면 학원수업을 마친 영은이가 현관에 들어서면서 쉴 새 없이 재잘댔었다”며 “막내가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영은양의 오빠와 언니는 다니던 직장으로 되돌아갔다. 여동생을 잃은 슬픔을 애써 누른 채 일상을 찾은 것은 오로지 부모 걱정 때문이었다. “큰 아들이 ‘언제까지 슬퍼만 하고 있을 거냐’고 말하곤 해요. 의연하게 행동하지만 자기 속은 얼마나 아프겠어요. 뭔가에 몰두하면 의욕이 생기겠지 싶어 전 회사에서 오후 11시까지 일하다 퇴근해요. 정신 없이 살면 좀 나아질까 해서…”

단원고 2학년 8반 고 임현진군의 아버지 임희민(44)씨도 “소주 한잔 걸치지 않고서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어스름이 걷히는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잠드는 날이 많다”고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그는 “아내 역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울지 않는 날이 없다”며 눈물을 떨궜다.

그리움 못지 않게 유가족들을 괴롭히는 것은 생계 문제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가족 대책위원회 활동 등을 하면서 많은 유가족들이 오랫동안 생업을 이어가지 못한 탓이다.

특히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의 생계 문제가 심각하다. 일반인 사망자 대다수가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었기 때문이다. 윤경자(72)씨는 자신과 치매를 앓는 남편의 생활비를 대던 아들 고 이광진(42)씨를 참사로 잃었다. 이씨는 공사현장에 일을 하러 제주도행 세월호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 이씨의 매형 한성식(49)씨는 “매달 200만원씩 벌어오던 처남이 사망하면서 장인의 병원비와 생활비가 끊겨버렸다”며 “장모님이 얼마 전부터 봉제공장에 다니시면서 50만원 정도 벌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나 역시 벌이가 많지 않아 한껏 도와드리기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단원고 학생들과 달리 일반인 사망자들은 여행자 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그동안 유가족들은 최소한의 보상금도 받지 못했다. 특히 이들은 생계가 곤란해 어떻게든 보상이나 배상에 의지해야 할 처지인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사망자의 채무를 상속 받기로 결정한 유가족도 적지 않다. 세월호특별법 2차 합의안을 수용한 것도 당장 먹고 살기 막막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게 일반인 유가족들의 입장이다. 한씨는 “정부가 참사 이후 계속 불어나고 있는 은행 대출이자라도 우선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국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달라”고 청했다. 고 임현진군의 아버지 임희민씨는 “많은 분들이 유가족들을 정치적이라고 오해하고 있지만 우리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한결같았다”면서 “우리 가족이 어떻게 희생당했는지 정확한 진상규명을 해달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의 손을 꼭 쥐면서 “국민들의 관심 없이는 버텨낼 수 없다. 부디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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