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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부정수급 색출' 불 켠 정부, 기초생활자 고통엔 깜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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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부정수급 색출' 불 켠 정부, 기초생활자 고통엔 깜깜

입력
2014.10.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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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24만 가구가 수급 깎이고 급여감소액도 2배 가까이 늘어나

정부 '복지사각' 2만여명 찾아낸 후 기업 등 민간지원에 떠넘기기도

전북 전주에서 혼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이모(81)씨는 2012년 말부터 매월 생계급여를 20여만원씩 덜 받고 1년을 지냈다. 연락이 뜸한 아들(부양의무자)이 실직해 소득이 없는데도 이씨에게 ‘간주부양비’가 부과돼 원래 48만원 받던 현금급여(주거급여+생계급여)가 27만원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간주부양비는 부양의무자가 소득이 있을 경우 실제로 부양비를 준 것으로 간주해 수급액을 깎는 것이다.

올해 1월 복지단체가 주거실태조사를 하며 이씨가 생계급여를 덜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전북도에 이의 신청했지만 이씨는 1년 넘게 깎인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아들의 실직이 확인됐지만 도에서는 실직한 시점 대신 실직을 확인한 시점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매년 보건복지부가 발간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서’에 올해 처음으로 ‘수급자 및 부양의무자의 소득 재산 변동사항은 ‘발생월’이 기준이지만 확인이 곤란하면 ‘확인월’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포함된 데 따른 것이다.

이씨는 도에 아들의 퇴사 증명서를 제출해 실직 발생월을 증명했지만 도는 확인월 기준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발생월 기준이 원칙이니 (소급지급에) 별 문제 없다”고 말했지만 복지단체에선 “간주부양비 등 복잡한 제도를 모르는 수급자들은 정부가 주는 대로 깎인 급여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씨를 대신해 이의 신청을 한 복지단체 평화주민사랑방의 문태성 대표는 “확인월 기준을 올해 넣은 건 정부가 생계급여 지급을 적극 줄이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올해 2월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지원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정부와 여당이 “부정수급으로 인한 재정낭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등 빈곤층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3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 받은 ‘국민기초생활 수급자 현황’을 보면 수급이 깎인 가구 수는 2011년 245만5,000여 가구에서 지난해 424만7,000여 가구로 크게 늘었다. 급여 감소액도 같은 기간 980억원에서 1,649억원으로 증가했다.

부정 수급을 막겠다는 취지로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면서 수급자가 되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하는 빈곤층도 늘고 있다. 혈연관계가 없는 양자, 양부, 의부 등이 부양의무자여서 실질적인 부양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부양의무자와 ‘남남’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서울사회공익법센터와 서울복지법률지원단 등은 15만원에 달하는 유전자 검사 비용을 지원해 주고 있다. 이 곳에서 제공한 ‘무료 유전자 검사 지원 현황’을 보면 기초수급비 지급에 따른 부양의무자 관계 규명을 위한 유전자 검사는 2011년 5건, 2012년 15건, 지난해 26건이며, 올해는 8월까지 12건이 실시됐다.

또한 정부는 송파 세모녀 사건을 계기로 올해 3월 대대적인 복지사각지대 조사를 벌여 2만1,043명의 빈곤층을 발굴했으나 이들 가운데 66%(1만6,270명)는 기초수급 인정이나 긴급복지 지원 대신 기업 사회공헌팀이나 공동모금회 후원금 등 민간지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가 직권조사로 생계가 어렵다고 찾아낸 이들이 정작 공적 지원에서 탈락된 셈이다.

김성주 의원은 “정부는 가난하지만 부양의무자 등 기준 때문에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재정 낭비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부정수급 색출에만 골몰하고 있다”며 “일선 사회복지공무원의 수급권을 보장하고 적극적인 사례관리를 하도록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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