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삶이 막다른 골목에 도달할 때 우리는 ‘망명’을 열망한다. 사회학적으로 망명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외부로 향하는 ‘지리적 망명’이다. ‘지금, 여기’의 현실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삶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거나 아예 이민을 가는 것이 대표 사례다. 정치적 자유를 위해 조국을 떠나는 망명도 지리적 망명의 또 다른 사례다.

다른 하나는 내부로 향하는 ‘내면적 망명’이다. 외부와 단절한 채 삶의 내부에 칩거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고립시킴으로써 자아정체성을 방어하고 지켜내려는 게 이 망명의 목표다. 내면적 망명은 인류 역사에서 반복돼 왔다. 이곳이 아니라 저곳이라면 난 얼마나 행복하겠는가라는 근대 초기 낭만주의는 그 대표 사례다.

“밖을 내다보는 사람은 꿈을 꾼다.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눈을 뜬다.”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의 말이다. 지리적 망명은 꿈을 꾸게 하고, 내면적 망명은 눈을 뜨게 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 현실이 곤궁하다면 망명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망명은 인간에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 외부로 향하든 내부로 향하든 망명을 통해 새로운 자유를 얻으려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다.

지금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지를 독자들은 이미 눈치 챘을 것 같다. 최근 큰 관심을 모은 ‘사이버 망명’을 말하려는 것이다. 사이버 망명은 국내 대표 메신저인 ‘카카오톡’이 국가기관의 ‘사이버 사찰’을 받았다는 게 알려지면서 외국 메신저인 ‘텔레그램’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카카오 측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등장 이후 감청 영장이 147건,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요청이 2,467건에 이르렀고, 압수수색 영장은 4,807건에 달했다고 한다. 사이버 사찰이 조직적으로, 대규모로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많은 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국가기관의 사찰뿐만 아니라 카카오톡의 반응이었다. 다음카카오톡 측은 “검찰이 부르는데 안 갈 수 없는 것 아니냐” 등의 발언을 함으로써 불신을 자초했다. 솔직하다면 너무 솔직한 이런 무책임한 태도는 결국 카카오톡으로부터의 탈출과 보안이 안전하다고 알려진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엑서더스’를 낳았다. 뒤늦게 다음카카오톡 측은 사이버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말했지만 한번 상실한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사이버 망명에는 국가기관 사찰, 정보인권 보호, 관련 기업 윤리 등의 이슈가 담겨 있다. 사이버 사찰이 갖는 문제는 혐의와 무관한 개인의 사생활 정보가 제공되고, 복수의 상대방이 존재하는 메신저 통신의 성격상 인권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보 시대에 메신저는 일상의 축도판이다. 경우에 따라선 직접 말로 하기 어려운 것을 넌지시 글로 전달하는, 소수에게만 공개하고 싶은 일기장과도 같은 것이다. 문제의 출발이 국가기관 사찰에 있고, 우리 현실에서 기업이 정부에 맞서기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객의 정보인권을 내팽개친 듯한 기업 윤리가 일종의 소비자 불매운동인 사이버 망명을 부추긴 셈이다.

누군가 나의 메신저를 동의 없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말하는 ‘원형감옥(panopticon)’이 바로 이것이지 않은가. 원형감옥은 내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안겨주고, 결국 스스로를 알아서 검열하게 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축시킨다. 자신이 사이버 감옥의 수인(囚人)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새로운 자유의 공간으로 망명을 떠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형태이든 망명은 분명 자유를 선물한다. 하지만 이 망명이 정부 통제에 따른 결과라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사생활과 통신 비밀을 침해 받지 않을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국가 안보를 위해 불가피하더라도 검찰이든 법원이든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해야 한다. 더욱이 정보통신 관련 분야는 현재와 미래의 신(新) 성장동력의 핵심이다. 국내 정보통신 산업을 외려 위축시키는 게 정부가 내건 창조경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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