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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저가 강요… 인터넷 만물상 아마존의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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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저가 강요… 인터넷 만물상 아마존의 속내는

입력
2014.10.1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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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권당 9.99달러, 갑의 횡포? 가격 인하 거부한 佛 출판사 책 배송 지연 등 구매 방해 보복 드러나

아마존 두둔 목소리도… 소규모 출판사들은 "은혜 입었다" 등용 작가들 "최고의 선물" 옹호

거세지는 독점 논란… 출판시장 30%·전자책 60% 점유, 反아마존법 등 유럽 내 경계 움직임 확산

한 아마존 직원이 지난해 12월 2일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에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거대한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배송물들 사이로 상품이 담긴 카트를 밀고 있다. 사이버 먼데이는 추수감사절 연휴 이후 처음 맞이하는 월요일로 대형 할인 행사 등이 진행돼 온라인 쇼핑업체가 일년 중 가장 바쁜 날이다. 피닉스=AP연합뉴스
한 아마존 직원이 지난해 12월 2일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에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거대한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배송물들 사이로 상품이 담긴 카트를 밀고 있다. 사이버 먼데이는 추수감사절 연휴 이후 처음 맞이하는 월요일로 대형 할인 행사 등이 진행돼 온라인 쇼핑업체가 일년 중 가장 바쁜 날이다. 피닉스=AP연합뉴스

지난 5월 아마존에서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의 신간 ‘누에’를 예약 주문하려던 독자들은 실망한 채 인터넷 창을 닫아야 했다. 다른 책과 달리 누에는 예약 주문을 할 수 없었다.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로 유명한 제임스 패터슨의 소설도 평소보다 아마존 배송기간이 4~5배 길어졌다. 아마존에서 이런 불편함은 유독 프랑스 출판그룹 아셰트(Hachette)가 발간하는 책에서만 일어났다. 뒤이어 아마존이 아셰트와의 분쟁으로 독자의 책 구매를 방해한 보복조치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

반발 부르는 아마존 ‘9.99달러 정책’

갈등의 발단은 9.99달러(약 1만원)로 대변되는 아마존의 균일 저가정책이다. 아마존은 5월부터 아셰트와 가격 재협상을 벌이면서 현재 12.99~14.99달러인 전자책의 가격대를 9.99달러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전자책이 종이, 인쇄, 저장, 배송의 비용이 절약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상적인 전자책 가격은 9.99달러라는 게 아마존 주장이다. 통상 책 한 권을 팔면 전자책은 75%, 종이책은 60%의 이익이 남는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아마존은 또 “가격을 내리면 고객이 좋아해 결국 판매가 늘어나고 그러면 출판사도 이익을 보게 된다”는 명분도 내세웠다.

아마존은 협상에서 아마존의 수익 배분 비율도 높여 달라고 주장했다. 현재 작가, 출판사, 아마존의 수익 배분 비율은 각각 35%, 35%, 30% 수준이다. 양측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존은 수익 배분 비율을 50%까지 올리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과거 아마존 킨들팀에서 근무했던 스콧 제이콥슨은 “아마존은 출판사와 작가 사이에 이뤄지던 전통적인 가치 교환이 근본적으로 깨졌다고 보고 있다”며 “작가들이 세계 어디서나 직접 편집자를 고용하고, 웹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책을 마케팅하고, 아마존과 같은 사이트를 통해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게 되면서 출판사의 역할은 줄어들고 경제적 이득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셰트는 이미 자사에서 출판하는 책의 대부분이 9.99달러 이하이며 9.99달러는 마케팅, 인세 등 출판사의 전자책 생산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가격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아마존이 저가정책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려고만 한다고 비판했다.

유통업자의 흔한 ‘갑(甲)질’로 여겨질 뻔한 사태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세계적인 작가들이 8월 아마존을 비판하는 광고를 뉴욕타임스에 실으면서 판이 커졌다. 스티븐 킹, 폴 오스터 등 작가 909명은 뉴욕타임스에 ‘작가연합’(Authors United) 명의의 전면광고를 내고 “우리들의 생계를 담보로 출판사와 벌이는 협상을 중단하라”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아마존 이사회에 서신을 보내 “회사 측의 (보복) 조치로 아셰트 소속 작가들의 아마존 매출이 50~90%나 줄었다”며 “아마존이 문학계를 이런 식으로 대우한다면 회사의 좋은 평판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엘프리데 옐리네크 등 독일어권 작가 1,000여명도 공개서한을 통해 “아마존이 스웨덴 출판그룹인 보니어와의 전자책 가격 협상에 작가와 책을 인질로 쓰고 있다”며 “아마존이 사이트의 추천도서 목록에서 보니어 책을 배제하는 조작을 하고 보니어 책만 배송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폭로했다.

작가 조앤 K. 롤링의 신간 ‘누에'(The Silkworm)
작가 조앤 K. 롤링의 신간 ‘누에'(The Silkworm)

아마존은 단지 편리한 상점일까

아마존은 이런 행보가 전자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생존전략이라고 주장한다. 아마존 킨들 부문 부사장인 러셀 그랜디네티가 “책의 경쟁 상대는 다른 책이 아니라 캔디크러쉬와, 트위터, 페이스북, 스트리밍 영화, 무가지 신문”이라고 밝힌 데서도 이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월마트가 공급자에게 납품 단가를 후려치듯이 아마존도 유통업자로서의 본분에 충실할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들에게 아마존과 출판사 간의 반목은 독자들의 책 구매 행동 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는 시대의 과도기에 벌어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전자책 발굴 사이트 젤리북스의 설립자 앤드류 롬버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공급자는 (아마존 정책을) 받아들이기 끔찍하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마존의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을 사랑한다”며 “아마존은 악마가 아니다. 단지 잔인할 만큼 효율적일 뿐이다”라고 평가한다.

출판업계에서도 아마존을 두둔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주로 기성 출판시장에 끼지 못했던 축이다. 이들은 아마존 덕에 엘리트 중심의 높은 출판시장 문턱을 허물었다.

아마존에 10년 넘게 책을 납품해 온 독립출판사 ‘더 퍼머넌트 프레스’의 설립자 마틴 쉐퍼드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마존은 영세한 독립출판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왔다”며 “나는 아마존으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은 적이 없다”고 옹호했다.

아마존으로 등단해 스타가 된 신인 작가 빈센트 잔드리도 나섰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병과 캔을 모은 돈으로 식료품을 살 정도로 생계가 어려웠지만 아마존에서 전자책을 출간하고서는 이탈리아, 파리, 그리고 진짜 아마존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다. 그는 “아마존이야말로 작가들에게 활자 발명 이후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영화 ‘트와일라잇’의 ‘팬픽’(fan+fiction)이 모티브가 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저자 E.L. 제임스를 돈방석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도 아마존이다. 그는 지난 한 해 9,500만달러(한화 1,060억원)의 수입을 올려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작가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책은 ‘엄마들의 빨간 책’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주를 이룬 탓에 종이책보다 전자책에서 더 인기를 끌었다.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조지 앤더스는 포브스 기고에서 “스티븐 킹이나 로버트 카로 같은 유명작가는 아마존을 규탄했지만 7,000명의 무명작가와 이들의 팬은 아셰트가 아마존의 입장을 수용하라는 청원서에 사인했다”며 이번 사태를 출판업계의 신구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거세지는 아마존 독점 논란

하지만 출판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이라고 넘어가기엔 아마존의 독점 체제는 너무 위협적이다. 아마존은 미국 출판시장의 30%, 전자책 시장의 60%를 점유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팔린 책 4권 중 1권은 전자책이었고 이중 3분의 2는 아마존을 통해 팔렸다. 2011년에는 아마존 같은 인터넷 서점의 인기로 미국 내 2위의 대형서점 체인이었던 ‘보더스’가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파산했다.

아마존은 오프라인 서점을 쉬이 제치고 출판사의 경쟁자로 등극했다. 당장 아마존이 아셰트나 보니어에게 하듯이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출판사의 책들을 추천목록에서 빼 버리면 출판사가 타격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다.

아셰트의 최고경영자(CEO) 마이클 피치는 “이번 논란은 소비자 가격이 아니라 아마존의 마진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안나 홈스가 아마존의 행위가 "부끄러운 짓"이라고 비판
안나 홈스가 아마존의 행위가 "부끄러운 짓"이라고 비판

출판사들은 반격에 나섰다. 아마존은 최근 야심차게 ‘킨들 언리미티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월 9.99달러만 내면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지만 출판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아셰트를 포함, 미국의 5대 출판사인 맥밀런, 펭귄 랜덤하우스, 하퍼콜린스, 사이먼앤드슈스터가 이 서비스에 전자책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아마존의 독점 체제에 대한 반감은 유럽에서 더 거세다. 유럽연합(EU)은 6일 아마존의 세금 탈루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앞서 영국에서는 세금 탈루 의혹이 불거지자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책의 무료배송 서비스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는데, 이 법안은 ‘반(反) 아마존법’으로 불린다. 특히 독일어권 출판시장은 미국, 영국과 달리 출판사와 작가가 큰 폭의 책 값 할인을 금지한 법률 등에 의해 보호받는 현실이라 아마존의 독과점을 더욱 경계하고 있다.

아마존과 대립각을 세우는 공급업체는 출판사만이 아니다. 아마존은 5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워너브라더스의 ‘워너 홈 비디오’와도 유사한 갈등을 벌였다. 아마존은 블루레이, DVD 판매 수수료를 인상을 요구하며 이들이 제작한 ‘레고 무비’, ‘트랜센던스’, ‘300: 제국의 부활’ 등의 판매를 중단했다. 워너브라더스는 결국 수수료를 올렸고 아마존의 다음 타깃은 월트디즈니가 됐다. 8월 아마존에선 월트디즈니가 만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말레피센트’의 DVD와 블루레이의 예약 판매가 중단됐다.

아마존은 반복되는 공급업체와의 싸움에서, 없는 게 없는 ‘만물상’(The Everything Store) 타이틀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라는 아마존의 기업정신이 퇴색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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