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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 운전병의 특명! 거리의 '적'을 피하라

입력
2014.10.0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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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리를 지날 땐 사팔뜨기가 된다. 주간은 물론이고 야간사격으로 군대서 포상휴가도 갈 뻔했을 정도의 전천후 시력 덕분인지 눈동자를 부지런히 굴리지 않고서도 휴대폰 만지작거리며 곧잘 다니던 나였지만 아빠가 된 뒤로 생긴 증상이다. 특히 유모차를 끌고 길에 나서면 더욱 그렇다. 이 땐 눈이 두어 개 정도 더 있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길거리의 ‘적’들이 유독 유모차만 공략(?)하는 것은 아닐 테니, 아빠가 된 뒤 민감해진 것 같다.

특히 횡단보도 앞에 서면 이 아빠의 감정은 대단히 변화무쌍해진다. 자동차, 오토바이들에게 정지선은 밟고 넘어서라고 있는 선이요, 녹색 보행등은 횡단보도 위 보행자들을 잘 피해서 지나가라는 의미의 신호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가 되고 보니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도 그들 대부분은 생업전선을 달리는 자동차고 오토바이라 생각하며 좀 가라앉혔다가,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지 저거 찍어서 어디 신고하자며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다가(저거 범칙금 6만원 짜린데…, 사복경찰이 필요해!),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그냥 두 눈으로 레이저만 날리고 지나간다.

백화점 엘리베이터에도 유모차 배려 안내 문구는 선명하다. 하지만 10㎏에 육박하는 아들을 들쳐 업을 때가 편할 때가 많다. 운동도 되고 정신 건강에도 좋다!
백화점 엘리베이터에도 유모차 배려 안내 문구는 선명하다. 하지만 10㎏에 육박하는 아들을 들쳐 업을 때가 편할 때가 많다. 운동도 되고 정신 건강에도 좋다!

횡단보도를 지나고 나면 이젠 담배연기가 기다리고 있다. 담배를 피면서 걷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것도 유모차를 본격적으로 끌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멀찌감치 있는 사람 중에 담배를 들고 있거나, 불을 붙이거나, 연기를 내뿜거나 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유모차 운전자의 방어운전이라면 방어운전. 여기에 풍향까지 감안해 루트를 짜면 금상첨화지만 돌아가는 게 귀찮아 잠시 멈췄다 가는 게 보통이다.

물론 흡연자 전부가 막 대놓고 피지는 않는다. 배려심 깊은 흡연자도 종종 있다. 서서 피다가도 접근하는 유모차를 발견하면 담배를 뒤로 손 바닥 뒤로 돌리고 길가로 물러서는 경우다. 이땐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소리가 튀어 나온다.(그렇다고 주변에 다 들릴 정돈 아니고, 옆을 지날 때 그 사람 방향으로 고개를 15도 정도 까딱하는 것과 동시에 낮은 목소리로 앞 두 음절에 액센트를 줘서 빠르게!) 혹자는 그렇게까지 사의를 표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진심 그런 사람들이 고맙다. 주변 개의치 않고 피는 사람들을 볼 땐 ‘담뱃값 좀 팍팍 올라야 돼!’ 하다가도 저렇게 점잖게 피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달라진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에 선명하게 적힌 유모차 우선 안내 문구. 간혹 짐가방 끄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엘리베이터 없이도 이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에 선명하게 적힌 유모차 우선 안내 문구. 간혹 짐가방 끄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엘리베이터 없이도 이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담배 연기를 뚫고 지하철 역에 닿으면 또 다시 눈살에 힘이 들어간다. 사지 멀쩡하고도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사람들 때문이다. 혼자 다닐 때야 완전 관심 영역 밖의 일이었는데 유모차를 밀고 보니 그런 사람들이 적잖게 눈에 띈다. 동네 지하철역이야 그래도 잠깐 기다리면 유모차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선 계단 못 오를 사연의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고백한다. 나도 눈 앞에 엘리베이트가 보여서 아무 생각 없이 탄 적 더러 있다.)

엘리베이터에 유모차 싣기의 백미는 단연 백화점이다. 지하철역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일반인들이 엘리베이터를 아무 생각 없이 이용한다. 눈앞에서 문이 열렸지만 멀쩡한 사람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 내부만 확인한 뒤 다시 문이 닫히길 네댓 번 반복하다 보면 표정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렇다고 뭐라고 쏘아 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지쳐 집에 돌아오는 길의 보도블럭은 또 얼마나 울퉁불퉁하고, 연석 연결 부분은 또 얼마나 매끄럽지 못한지…. 휴직을 하고 머리가 비교적 한가해진 탓인지, 부정(父情)이 발동한 것인지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적지 않게 거슬리는 요즘이다.

배려해주면 고맙고, 그 배려를 당연시 하면 안 되는 것도 알고 있다. ‘유모차 끈다고 유세하고 있다’고 들리지 않았음 하는 바람 간절하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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