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욱의 재즈너나들이] (4)베이시스트 전성식

베이시스트 전성식(46)의 길은 일견 혁신에서 현실로 가는 일반적 인생 경로와 닮았다. 그는 7개월째 문화 사업을 하는 경영자다. 음반 제작ㆍ공연ㆍ전시기획사인 온지 프렌드(Onzi Friend)의 대표가 공식 직함이다.

10월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작하는 크리스티안 살가도 사진전이 그의 작품이다. 영화 음악도 한다. 2015년 개봉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앨리스’를 장식할 선율이 그의 것이다. 아름다움과 공포스런 분위기가 겹치는 묘한 분위기의 음악이다. 음악감독, 작곡, 연주를 혼자서 다 한다. “내가 영화 음악을 하면 제법 원가가 절감 돼죠.”

전혀 트렌디 하지 않게도, 회사명은 ‘온고이지신’을 줄인 말이다. 대학 강의를 하는 선생님이니 한문투의 말이 그리 착종된 것은 아니리라. 그는 호원대 실용음악과에서 8년째 강사로 있으면서 재즈 앙상블과 베이스 두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15년 동안 해오던 동덕여대 강사 일은 회사일로 그만 두었다.

자신의 교육을 두고 그는 개성을 살려주는 교육이라 한다. “기량이 뛰어난 요즘 학생에게 굳이 이론을 가르치기 보다는 자유롭게 연주하기를 권해요. 특정 코드나 특정 스케일을 고수하지 않고 학생들이 음악적 자유를 누리게 하는 거죠.”

그는 요즘 학생들이 “주입식 교육에 ‘쩔어’ 자기만의 음악을 못한다”고 지적했다. “테크닉은 좋은데 개성이 없어요.” 음악을 듣지 않는 것은 정말 큰 문제라고 했다. “그것(음악 듣기)마저도 수업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그는 학생들에게 음악의 존재 이유부터 체득하도록 한다. 그래서 좋은 곡 많이 들려주고 학생들이 음악을 찾아 듣게 한다. “드럼과 베이스가 완전히 새로운 리듬을 구사하는 게리 버튼의 ‘레이디스 오브 메르세데스’, 찰리 헤이든이 그룹 콰르텟 웨스트와 함께 연주한 ‘데어 인 어 드림’ 같은 거죠. 아름다운 발라드인 ‘데어…’은 학생들이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신비로울 수 있나를 깨닫게 해 주는 곡입니다.”

베이시스트 전성식.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저 같은 교수 방법이 가능한 것은 그의 폭넓은 음악적 지평 때문이다. 그는 재즈, 국악, 클래식, 영화음악, 록, 블루스 등 다양한 음악을 거쳐왔다.

전성식은 고교 졸업 직후인 열아홉 살 무렵을 자신의 음악적 입문기로 본다. 자기 식으로 카피(copy)해 나가다 벽에 부딪칠 때면 클래식 작곡가에게 화성 분석 등 도움을 요청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곡 50여 편에는 부지불식간에 클래식의 영향이 스며있다.

전성식은 “나의 곡 전부가 클래식의 영향을 받았다”며 “화성적 다양성을 특히 좋아해 쇼스타코비치의 현악4중주 등을 많이 들었다”고 자신의 클래식 취향을 소개했다. 실제로 그는 게스트로 ‘G선상의 아리아’나 ‘보칼리제’ 등 대중 클래식을 교향악단 반주로 연주하기도 했다.

장르를 불문한 그의 음악적 탐구가 화려하게 빛나는 곳은 역시 클럽이다. 이태원의 클럽 ‘올 댓 재즈’에서 15년 동안 활동하면서 ‘올 오브 미’와 ‘미스티’를 지겹도록 연주했다. 그 무렵 발표한 경쾌한 스윙 재즈 4중주곡 ‘배니싱 트윈’은 너무 많이 연주해 이젠 아예 안 한다.

그가 속해있던 밴드 가운데는 RSVP가 일반에 가장 친숙한데 그 밴드에는 이정식(색소폰), 이영경(피아노), 박지혁(기타), 남궁연(드럼) 등 쟁쟁한 멤버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획기적 음악 콘텐츠를 선보인 밴드는 네브라스카로 크리스 바가(드럼), 김진호(베이스), 임미정(피아노) 등이 함께 했다. 대다수가 스탠더드 재즈나 이지 리스닝 음악을 할 때 네브라스카는 박자를 해체하거나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편곡해 연주했다. 밴드 멤버들의 은근한 경쟁 의식도 한몫 했던 것 같다. 국내 최초의 8분의 7박자를 비롯해 8분의 5박자 등 당시로서는 낯설기 짝이 없는 스타일을 선보였다. 어떤 곡이든 그들만의 박자 감각으로 변용했으며 그 때문에 연습실도, 무대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만족할만한 연주가 안 되면 무대에 올라서는 안 된다는 나름의 원칙으로 연습에 집중했던 시기다. 객석이 많이 어려워했고 클럽 주인들이 눈치를 보냈지만 5년 동안 밀고 나갔다.

그 같은 흐름은 지금도 있다. 그는 “요즘 젊은 연주자들에게도 그런 의욕이 있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종종 확인한다”며 “그러나 음악 특히 재즈가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런 움직임이 언제까지 갈지 자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 사업자로 변신한 그는 현재 세계적 소프라노 신영옥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한달 전 미국으로 떠났던 것이 그 때문이었다. 전성식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할리우드 영화음악 작업을 하는 친구이자 작곡가 남우진 덕에 신영옥과 연결됐다. 12월 17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신영옥의 음반 발매 기념 공연에서는 전성식, 조윤성(피아노) 등 한국의 재즈맨들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할 예정이다.

아직 현역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한국인만의 감성을 살린 재즈가 해묵은 숙제”라며 “내가 게을러 그 숙제를 아직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전성식의 한국 재즈를 기대할 때가 됐다. 기교나 이론의 차원 넘어선 한국적 감성의 재즈가 될 것이다.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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