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선 정치부 기자

“대통령께서는 강한 의지와 철학을 갖고 회의에 참석하고 발언하기 때문에 참모들로서는 (대통령 발언 내용을) 사전에 알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뉴욕 방문 일정 마지막 날인 25일(한국시간) 발생한 대통령 말씀자료 소동을 해명하면서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이 28일 내놓은 설명이다. ‘대통령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발언을 할 것인지는 대통령 본인만 안다’는 명제는 어느덧 박근혜정부 청와대의 금과옥조가 됐다. 박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세월호특별법 논란과 관련해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을 때도 이를 몰랐던 대다수 참모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메시지 관리뿐 아니라 거의 모든 국정 현안을 틀어 쥐고 직접 결정한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청와대 업무를 구석구석 챙길수록 참모들의 책임감이 작아진다는 데 있다. 청와대 설명을 종합하면 25일 소동은 해당 자료가 박 대통령이 실제 발언할 내용을 담은 연설 자료인지, 간담회에서 나올 질문에 대비한 참고 자료인지를 점검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자료를 배포하기에 바빴던 참모들의 무책임한 실수에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의 16일 세월호특별법 언급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놨을 때도 청와대가 이후 상황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참모는 별로 없었다.

핵심 친박 인사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권한을 넘겼다가 ‘사고’가 나는 것을 걱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자신과 김기춘 비서실장 이외에 임무를 주지 않는다면 청와대 시스템엔 구멍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오히려 더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또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 경제 실현을 위한 참모들의 창의성과 상상력도 기대할 수 없다.

요즘 청와대 참모들은 권한도 책임도 별로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청와대 1,2급 비서관들이 과거 정권의 5급 행정관 역할 밖에 못 한다”는 자조 속에 표현한다고 한다. 관료들까지 끼인 사석에서는 “시키는 일만 하면 되니 공무원들이 청와대 근무를 더 편하게 생각한다”는 뼈 있는 농담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이런 우울한 분위기를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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