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임의 궁금하군] (4)스포츠선수 병역 특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과의 야구 준결승전 9회말 2아웃 상황. 일본의 마지막 공격에서 우익수였던 이용규 선수가 승리를 확정 짓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허구연 해설위원은 “저 눈물의 의미를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죠”라고 말했습니다. 최대 라이벌 일본과의 경기에서 0대 2로 지던 게임을 6대 2로 역전시킨 데 따른 감격의 눈물이었을까요? 이날 은메달 확정으로 야구 대표팀 가운데 이 선수를 포함한 14명이 군 복무에 대한 부담도 한 방에 날렸습니다.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딸 경우 사실상 병역을 면제해 주는 병역법 시행령 47조 2항에 따른 것입니다. 일본전 승리에 대한 기쁨이 전혀 반영 안 됐다곤 할 수 없지만 이 선수의 눈물에는 ‘병역 의무에 대한 해방감’도 적잖이 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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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야구대표팀 선수들이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첫 훈련을 앞두고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한창입니다. 뜬금 없이 6년 전 그 장면이 떠오르는 건 엔트리 공개 때부터‘병역 원정대’논란에 휩싸인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때문입니다. 대표 선수 24명 중 병역 미필 선수가 13명. “병역과 상관없이 최고 선수들과 함께 하겠다”던 류중일 대표팀 감독의 당초 선언과는 배치되는 선수들이 여럿 보이는데다 절묘하게 병역 미필인 각 구단 핵심 전력이 골고루 대표팀에 승선한 탓입니다. 사실 이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국제경기 야구대표팀 선발 때마다 되풀이됐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축구 대표팀 동메달이 확정된 이후, 후반 44분에 투입된 김기희 선수가 단 4분을 뛰고 병역특례를 인정 받아 ‘4분 전역’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따가운 시선에도 병역 특례에 목맬 수밖에 없는 선수들의 절박함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한창 기량을 발휘할 시기에 2년이 넘는 공백은 선수 생활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고 해외 진출에도 장애가 됩니다. 해외에 진출했더라도 경기력 향상에만 집중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군 복무 걱정까지 하는 자신의 처지를 보며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억울할 것도 같습니다. 재작년부터 중졸 미만도 군 복무를 하도록 제도가 바뀐 탓에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 병역이 면제됐던 이청용 선수처럼 축구에 올인하는 인생을 살 수도 없습니다.

스포츠선수에 대한 병역특례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73년입니다. 대한민국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는 일이 절박했던 시절, 국제경기대회에서 입상할 경우 국위선양 명목으로 4주간 군사훈련을 받는 것으로 병역을 대체시켜 줬는데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양정모 선수를 시작으로 현재(2014년 8월 말)까지 845명의 선수가 혜택을 입었습니다. 1990년 이후 병역 특례 대상이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현재 기준으로 굳혀졌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는 특별법까지 적용해가며 특례를 주기도 했습니다. 스페인과의 승부차기 끝에 한일 월드컵 4강행을 결정 지은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홍명보 선수가 총대를 메고 현장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건의해 병역 면제를 약속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러나 병역에 민감한 나라에서 유독 운동선수에 대한 병역 특례에는 관대했던 여론도 변하고 있습니다. 원칙을 자주 바꿔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는 등 형평성 논란이 커진데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진’ 일부 선수들의 ‘괘씸죄’도 원인이 됐습니다. 병역 혜택을 받기 위해 애국심 운운하며 대표팀 차출을 간절히 희망했다가 혜택을 얻은 후에는 ‘나 몰라라’ 식으로 각종 핑계를 대가며 참가를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죠. 국제대회 입상이 더 이상 국위선양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됐고 일각에서는 군대에 가도 선수 기량을 발휘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선수' 차범근은 공군 복무를 모두 마친 후에야 독일(당시 서독) 분데스리가 무대에 맘 편히 발을 붙일 수 있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본보기가 되는 것이 바로 차붐, 차범근 선수(전 SBS 해설위원)입니다.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의 외국인선수로 꼽히는 차범근 선수가 1970년대 중후반 공군에 입대해 군 복무를 완수했는데도 실력이 전혀 녹슬지 않았기 때문이죠. 물론 차범근 선수의 군 복무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군 복무 중 독일 구단 입단 기회를 얻었지만 정부가 ‘만기 복무’를 이유로 소환명령을 내린 탓에 귀국해서 잔여 복무 기간을 채우고 다시 독일로 건너가야 했습니다. 다만 차범근 선수가 군 복무를 다한 이후에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린 사실을 볼 때 대한체육회가 우려하는 것처럼 군 복무 후에도 실력 저하는 없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선수들에게 ‘너희들도 차붐처럼 군 복무도 하고 이후에도 최고 기량을 보여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때문에 병무청의 고심은 날로 깊어지고 있습니다. 형평성 논란을 타파하기 위해 지난해 대회 별로 평가 점수를 매겨 누적 점수가 일정 기준을 넘어야 특례를 주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은 100점, 은메달 70점, 동메달 50점, 아시안게임 금메달 50점 이런 식으로 점수를 부여해 단 한번의 메달 획득으로 군 입대를 면제 받는 일은 없도록 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한체육회 등의 거센 반발 때문에 현재까지도 병무청 내부 검토 중인 상태에 있습니다.

실력 저하 우려 때문에 ‘선수 시절 군 복무’도 불가능하고 누적 점수제 도입도 안 된다면 차라리 은퇴 후에 병역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병역 의무 유예제’는 어떨까요. 선수 대부분이 보통 10년 넘게 선수생활을 하는 것을 감안할 때 30대 중후반 이후에 병역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전성기 때는 맘껏 그라운드를 누비게 하고 은퇴 후 당당하게 군 복무를 마치도록 하면‘병역 면제를 위해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비아냥도 듣지 않고 선수로서 명예도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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