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의 국제뉴스 들춰보기]

※ 알려지지 않은 나라 밖 이야기, 외신 기사의 이면과 몰랐던 소식을 전하는 '김범수의 국제뉴스 들춰보기'를 오늘부터 새롭게 연재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한 10년 전쯤 ‘아침형 인간’이란 말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일직 일어난 새가 벌레 잡는다는 말처럼 부지런해야 성공한다는 의미가 새삼 인기를 부추긴 점도 있지만, 아침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메시지에 호응이 일었던 이유도 있다. 계기를 만든 것이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었다. 전체 판매량은 지금 알 수 없지만 어림 잡아 100만부 정도였을 것으로 짐작 되는 이 책은 사이쇼 히로시라는 일본의 한 의학연구소장이 쓴 책을 번역한 것이었다.

‘아침형 인간’ 붐을 일으킨 원조 국가 일본에서 요즘 다시 아침형 인간 바람이 불 조짐이다. 이번에는 책이 아니라 기업 현장에서다. 일본 정부까지 지원하고 나설 참이다. 가능하면 야근을 줄여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맞추도록 아침에 조금 일찍 나오는 건 어떠냐는 취지다. 아침에는 가정생활이 없는가 하는 의문도 들지만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기선을 잡고 나선 것은 무역회사로 유명한 이토추(伊藤忠). 이토추상사는 지난 5월부터 오후 8시 이후 야근을 원칙으로 금지했다. 또 오전 5~8시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하는 ‘아침형 근무’ 제도를 새로 도입했다. 업무 시간은 줄이고 효율은 높이겠다는 게 제도 도입의 목적이니 ‘아침형 인간’ 책의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토추는 이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노조 간부들에게 물었더니 한결 같이 찬성이었다고 한다.

특히 여성 직원들의 경우 지금까지는 상사가 늘 야근을 하기 때문에 눈치 보여 일찍 퇴근할 수 없었지만 이 제도 도입 이후 오전 7시 반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해서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듣고 보니 맞벌이의 경우 부부가 근무시간을 다르게 할 수 있으면 육아도 어느 정도 숨통이 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카후지 마사히로(岡藤正廣) 사장은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아침 근무가 느는 대신 야근이 줄었기 때문에 회사의 잔업수당 지출은 전체적으로 7% 정도 줄었다”며 “다른 회사에서도 도입을 검토하는 모양”이라고 은근히 자랑까지 했다.

비슷한 취지로 이번에는 일본 후생노동성이 ‘아침형 근무’를 보급시키기 위해 기존의 ‘노동시간 등 설정 개선법’ 지침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후생노동성은 이 지침에 일정 시간 이후 잔업을 금지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다음 날 아침 일찍 하도록 하는 아침형 근무를 장려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아침 근무로 근무 효율을 높이고 대신 야근을 줄여 빨리 귀가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일과 생활을 조화하는 사회’를 목표로 삼아 2020년까지 주간 노동시간 60시간 이상인 회사의 비율을 5%(지난해 8.8%)로 낮추고, 연간 유급휴가율을 70%(2012년 경우 47.1%)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야근을 줄일 경우 특히 남성이 육아에 참가해, 일도 하고 가사까지 전담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본 가정의 여성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하는 듯 하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글쎄. ‘저녁이 있는 삶’은 안중에 없고 일찍 퇴근하면서 한 잔 걸치려는 남성이 늘어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문득 든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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