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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가혹행위 예방책, '폰'이 최선입니까?

입력
2014.09.1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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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사용하면 과연 병영 내 가혹행위가 줄어들까?”

윤 일병 사망 사건 파문 이후 한 달 넘게 이 물음에 답을 못 내린 터라 답답한 마음에 주변에 있는 20~30대 예비역 20명에게 SOS를 요청했습니다. 7~8년 전 군대 간 친구들이 싸이월드(요즘 이용하는 병사들은 극히 드물 테지만)에 자유롭게 생활관에서 찍은 사진도 올리고 일기도 쓰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던 저로선 부대 내 휴대폰 사용이 군에 미칠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각자 군 경험이 달라서인지 예비역 20명의 조언은‘군대가 캠프는 아니다’, ‘미친 것 아니냐’라는 거친 답변부터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시대가 바뀌었으니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않느냐’는 의견까지 다양했습니다.

사실‘병영 내 휴대폰 사용’은 이미 지난 1일부터 같은 생활관 내에서 병사 계급별로 공용 휴대전화를 지급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일부 부대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군 보안을 위해 스마트폰 대신 폴더형 2세대(2G)폰이 지급됐다고 합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예비역들이 과거에 상상조차 못했던 휴대폰 사용은 ‘윤 일병 사망 사건’ 파문이 일파만파로 퍼진 지난달 4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의 “외부와의 연락을 자유롭게 하면 구타는 근절될 것이다. 차라리 부모에게 말할 수 있도록 휴대폰을 지급하라”는 요구에 권오성 전 육군참모총장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답한 것이 발단이 됐는데요, 이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관련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20명의 예비역들은 우선 보안 문제만 해결된다면 휴대폰이 병사들의 고립감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육군 11사단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L(37)씨는 “병사들이 여기저기 편지 쓰고 틈만 나면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는 이유가 있다”며 휴대폰이 외부와 단절된 병사들의 고립감을 해소시켜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고립감 해소가 저절로 가혹행위 근절로 이어질 지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습니다. C(33)씨는 “윤 일병에게 휴대폰이 있었다 해도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 있었을까”라고 되물었습니다. 휴대폰이 있어도 학교폭력이 얼마든지 발생하는 것만 봐도 그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죠. 오히려 역효과를 낼 여지도 있습니다. 선임 욕하는 일기를 썼다가 들켜서 곤욕을 치렀다는 K(27)씨는 “선임들이 후임 일기나 메모를 읽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문자메시지나 통화내역 검열도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윤 일병에게 휴대폰이 있었다 해도 선임들이 애초에 휴대폰을 압수해 부모에게 거짓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눈 앞에서 부모를 안심시키는 통화를 하도록 시키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상상은 아닌 듯합니다. 실제로 윤 일병이 생활하던 내무반 바로 앞의 공중전화도 비극을 막지 못했습니다.

J(28)씨는 “휴대폰이 어떤 식으로 보급될 지 상상이 안 간다”며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군 내부적으로도‘보안 때문에 스마트폰은 불가하다’는 정도의 방침만 정해졌지, 개별 보급할 지 공용으로 할 지, 비용 부담은 병사가 할지, 국가에서 지원할 지 뚜렷하게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국가에서 전액 지원할 경우, 그 비용은 수십억에서 백억원대까지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해병대 출신인 K(31)씨는 “휴대폰만 만지다 보면 병사 간 따로 노는 문화가 생기고 결국 대화나 전우애는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했고 J(32)씨는 “훈련시간에 통화가 안 되면 부모들은 더 불안해 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 정답이다 혹은 오답이다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날 가장 와 닿았던 것은 “휴대폰 허용은 옆의 동료가 언제든지 너를 꼰지를 수 있으니 다들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는 것”이라며 “결국 군이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 못하겠으니 외부에라도 알리라고 선언하는 꼴 아니냐”는 B(32)씨의 지적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휴대폰을 사용케 하자’는 제안도 그간 은폐와 축소를 일삼았던 군을 못 믿겠다는 불신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요. 군 당국이 병영 내 휴대폰 사용을 두고 고심하는 데 쓰는 에너지를‘신뢰 받는 군’으로 거듭나기 위한 진지한 성찰을 하는 데 우선 쏟는 건 어떨지 생각해봅니다. 나의 오빠와 남동생과 아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군이 된다면 휴대폰은 굳이 없어도 되지 않을까요.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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