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관심 갈수록 희미해지는 현실

여야ㆍ청와대엔 해법 기대할 수 없어

유가족만이 국민마음 움직일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 대표단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새누리당과의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 3차 면담이 결렬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매듭을 지음에 있어 방법이 더 중요할 수도 있고, 시기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세월호 특별법 문제, 세월호 정국에 대한 매듭이 필요하다. 지금 매듭을 짓지 못하거나 않는다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긴다. 방법이 중요하지만, 시기를 놓쳐서는 더욱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야-유가족 ‘삼각줄다리기’가 하염없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족이 앞장서서 매듭을 끊는 결단을 내려주어야 한다.

올 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였다. 참사 현장이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함께 발을 구르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자기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에 같이 슬퍼하고 분노했다. 나라는 나라가 아니었고, 정부는 정부가 아니었다. 국가개조라는 혁명적인 선언마저도 국민들의 마음엔 너무나 미흡한 표현이었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했고, 올 여름 내내 세월호 가족들은 국민 정서의 구심점이었다.

추석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내일모레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개월이다. 그 동안 사고수습 외엔 아무 일도 없었다. 대통령도, 새누리당도, 새정치민주연합도 아무런 일을 만들지 못했다. 진도 팽목항에서 서울 광화문광장까지 세월호의 모습도 그대로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겼던 국민들의 마음이다.

어느새 세월호 피로감이란 말이 나왔다. 그나마 세월호 참사가 이 나라에 던져놓은 무게에 눌려서 지극히 조심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그 조심성마저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얘기조차 피하려 든다. 국민 마음의 중심이 세월호를 애써 비켜가고 있는 것이다. 올 가을 추석민심의 현주소였다.

지금에 와서 굳이 그 이유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청와대의 외면, 새누리당의 버티기, 새정치민주연합의 무능을 모르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다만 새정치민주연합의 무능에 진저리를 치고, 새누리당의 버티기를 모른 척하고, 청와대의 외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사람들이 앞으로 더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한 마음으로 슬퍼하고 분노하며 세월호 주변으로 똘똘 뭉쳤던 국민의 마음이 쪼개지고 반목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을 역류시키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해법을 제시하겠다며 국회의장단이 나섰다. 본회의에서 다급한 민생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여야가 빨리 합의하라는 압력이다. 정 안되면 직권상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의 배수진이다. 하지만 본회의 직권상정도 할 수 없고, 여야 합의도 ‘정 안 되는’ 쪽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합의의 한쪽 당사자인 새정치연합의 형편이 세월호 특별법 합의에 신경을 쓸 처지가 아니다. 비상대책위원장 선임을 둘러싸고 원내대표가 취임 이후 최대의 위기 속에 흔들리고 있다. 그가 다시 세월호 유가족과 협의하고 여당과의 합의를 이끌려면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를 지 모른다.

여야 합의 준수라는 원칙을 앞세운 새누리당의 버티기는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정부여당의 철저한 항복을 요구했던 ‘세월호 민심’이 어느새 희석되고 있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새누리당이 한 발자국이라도 뒤로 물러설 리가 없다. 오히려 더 앞으로 나갈 기회를 찾고 있다. 청와대 역시 못지 않다. ‘대통령 면담’을 화두로 여-야-유가족 사이의 3자 대화가 한창일 때도, 그 이후에도 청와대는 세월호 ‘세’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국민의 마음을 다시 움직여야 한다. 현재의 야당을 중심으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청와대와 여당은 국민의 마음이 지금 이 상태로 그냥 흘러가기를 바라고 있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쪽은 세월호 유가족뿐이다. 지난 여름 팽목항에서 서울시청광장까지 전국민이 보여주었던 슬픔 분노 사랑 격려에 이제는 대답해야 한다. 정국을 정상화하고, 잊혀져 가는 국가개조의 합의를 되살릴 수 있는 결단을 유가족들이 내려야 한다. 최선과 근본만을 붙들고 있다가는 얻을 수 있는 많은 것을 되레 잃을 수 있다. 방법보다 시기의 문제이고, 지금이 그 현실적인 시기다.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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