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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굴욕

입력
2014.09.0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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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보수 진영이 보이는 거만함은 생소하다. 우월감은 진보 정치 세력의 전유물이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새로 쓴 책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줄곧 진보파가 선거를 그르쳐온 요인 중 주요한 것으로 잘난 척하는 태도를 꼽았을 정도다. 7ㆍ30 재보선 공천 파동으로 드러난 첨예한 제1야당 내 계파 갈등이 지금껏 탐욕을 부정한 게 결국 위선 아니었냐는 빈축을 사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맨 왼쪽) 원내대표와 김한길 의원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최근 들어 보수 진영이 보이는 거만함은 생소하다. 우월감은 진보 정치 세력의 전유물이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새로 쓴 책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줄곧 진보파가 선거를 그르쳐온 요인 중 주요한 것으로 잘난 척하는 태도를 꼽았을 정도다. 7ㆍ30 재보선 공천 파동으로 드러난 첨예한 제1야당 내 계파 갈등이 지금껏 탐욕을 부정한 게 결국 위선 아니었냐는 빈축을 사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맨 왼쪽) 원내대표와 김한길 의원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공수가 바뀌었다. 우쭐대는 쪽이 우파라니. 주제넘은 도덕 운운에 강경파 잘라라 훈수까지. 늘 얕보던 반대편에 오만 말라 맥없이 흘기는 게 지금 좌파 신세다. 균형은 완전히 깨졌다.

“교황의 방한은 세월호 참사 이후 슬픔과 억울함으로 심신의 에너지가 방전돼버린 유족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았다. (…) 그러나 교황이 떠나자마자 크리스마스 선물은 한여름에 내린 눈처럼 거짓말같이 녹아버렸다. (…) 사랑과 용서, 일치 대신 미움과 다툼과 분열이 일었다.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0일 넘게 곡기를 끊었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에 대한 갖가지 마타도어(흑색선전ㆍ중상모략)가 떠돌기 시작했다. 김씨의 페이스북엔 단식을 비아냥대는 음식 사진이 올라왔고, ‘우파’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한 단체는 ‘폭식투쟁’을 제안하기도 했다. (…) 각종 여론조사는 세월호 특별법으로 한국 사회가 딱 두 조각 났음을 보여줬다. 세월호 협상을 다시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2년 전 대선 때 연령, 정치성향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가 갈렸던 것과 흡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 6ㆍ4 지방선거와 7ㆍ30 재보선을 통과하며 애도는 정쟁으로 변했고, 여야 협상을 거치며 편이 갈렸다.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는 사회적 화두는 진영논리로 대체됐다. (…) 정부책임론으로 주눅들었던 새누리당은 다시 어깨에 힘을 주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가까운 한 야당 인사에게 “새누리당 지지층 대부분이 여야 협상안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고, 염수정 추기경도 유족들이 양보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느냐”며 자신감을 보였다고 한다. (…) 반면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두고 온종일 빗속에서 유족들과 걸었던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온갖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안갯속이다. (…) 한달 전쯤 찾아갔던 팽목항이 떠오른다. 100일 넘게 계속된 사람들의 눈물로 염도마저 변했을까 싶었던 바다는 아무 일 없었던 듯 평화로운 모습으로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그러나 고장난 정치는, 모든 것을 잊은 듯한 팽목항 앞바다와 같을 리 없다. 오만과 무능이 빚어낸 블랙코미디는 앞으로도 반복ㆍ변주될 테니. 실패가 거듭되기 때문에 잊기도 힘들다는 절망감은,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동의어가 돼버렸다.”

-8월의 크리스마스, 그 뒤(한겨레 ‘프리즘’ㆍ이유주현 정치부 기자) ☞ 전문 보기

“지난주 채널A가 내보낸 세월호 유족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막말 동영상은 충격이었다. (…) 물론 김 씨는 새정연(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후보로 나중에 전략공천 될지 몰라도 지금은 무관하다. 그럼에도 시중엔 ‘박영선 위에 문재인, 문재인 위에 김영오’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자식 잃은 부모 심정은 모두가 공감하지만 사람에게는 지켜야 할 기본이 있다. (…) 국가와 가족, 법과 규범 같은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우파가 김 씨에게 더 분노하는 것도 그 위아래 없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듯한 태도 때문이다. 그런 김 씨한테 절절매는 문재인과 새정연이 기가 막히고, 그런 정당이 정의나 ‘사람 사는 세상’을 소리 높여 외치기에 더 아니꼬운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최근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진보의 최후 집권전략’에서 나꼼수(‘나는 꼼수다’)가 결국 민주당에 독이 된 이유에 대해 “진보의 한 문화 장르로 머물러야 할 나꼼수가 진보정치를 진두지휘하는 위치로 격상됐다는 데 있다”고 했다. 나꼼수를 격상시켰던 친노(친노무현) 세력이 이번엔 김 씨 영웅 만들기에 앞장서더니 급기야 진두지휘를 받기에 이르렀다. (…) 문재인보다 더 기이한 모습은 박영선 원내대표와 그를 둘러싼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 486 정치인이다. (…) 박영선의 권력의지는 강했다. 자신이 타결한 여당과의 합의안이 두 번이나 당에서 비토당했으면 직(職)을 내놔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그는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겠다고 도로 강경으로 선회하고 말았다. 대체 박영선과 486은 왜 미래가 뻔한 길로 돌아선 것일까. (…) 486에는 국가나 집권보다 계파가 우선이다. 실력이 없어 정책으로 민심을 얻기도 힘들다. 국회선진화법도 있으니 반대만 하면 되는 야당이 훨씬 편하다. 생계를 위해 금배지는 달아야겠고, 그러자면 내년 3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장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종북(從北)보다 무서운 종파(從派)주의가 여기 있었다. 이들 덕분에 정부여당은 적폐 청산이나 관피아 척결 없이도 잘하면 선거마다 이겨 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불쌍한 건 김 씨와 동급으로 여겨질 세월호 유족들, 그리고 이런 제1야당을 둔 국민뿐이다.”

-김영오 막말과 싸가지 없는 진보(동아일보 기명 칼럼ㆍ김순덕 논설실장) ☞ 전문 보기

포퓰리즘은 제도화 실패의 산물이다. 제도권 내 해결이 옳단 압박은 그래서 자주 공허하다. 참척의 아픔을 조각내고 더럽힌 것도 정치권이다. 하지만 세월호는 포기할 수 없는 기회다.

“대중영합주의로 번역되는 ‘포퓰리즘’은 자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이 말은 절차와 제도를 무시하고 군중을 선동하면서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움직임을 가리킬 때 주로 쓰여 왔다. (…) 그런데 포퓰리즘은 정말 나쁜 것일까? (…) 포퓰리즘이 등장하는 시기는 선출된 대표가 시민들의 통제로부터 멀어져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한 집단으로 권력화할 때이다. 즉, 권력을 위임받은 선출된 대표들과 그 권력의 주인인 시민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을 때 그 틈을 뚫고 포퓰리즘이 등장하는 것이다. (…) 결국 대의민주주의가 이름뿐인 상황에서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을 때 포퓰리스트적 지도자가 등장하고 기존의 정치엘리트들은 이러한 도전을 두려워하면서 ‘선동’이라는 부정적 낙인을 찍고자 애쓴다. (…) 조직된 기득권 세력이 시민들로부터 멀어졌을 때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포퓰리즘적 저항은 한국 정치의 축복이자 한계이다. 이런 흐름이 기존 제도권에 긴장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의 축복이지만 포퓰리즘적 저항의 주체가 자신들의 주장을 제도화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포퓰리스트적 공격의 대상으로 전락해 왔다는 점에서 한계이다. (…) 거리에 모여드는 시민들의 요구에 기존 제도와 법을 거론하며 겨우 포퓰리즘의 낙인으로 모면하려는 정치인들은 게으르다. 시민들이 그들과 느끼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선출된 대표를 감시하고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에 연대하는 포퓰리즘적 저항의 목소리는 커질 것이다.”

-거리의 정치와 포퓰리즘의 진실(한겨레 ‘세상 읽기’ㆍ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전문 보기

“유가족 옆에 다수의 국민이 있다. (…) 둘을 분리시키려는 공작과 음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 때문에 지혜가 요구된다. 먼저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지 말자. (…) 진상 규명의 목적을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의 수단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현실에서 정확하다. (…) 그러나 여기에 집착하다 보면 법리 다툼이 나오고 결국 힘싸움으로 전락한다. 그 때문에 진상 규명의 가치(목적)만을 옹호하고 이를 위한 최적의 수단(법과 제도)은 정치권의 책임으로 돌리면 어떨까 한다. 유가족이 마치 정치권의 합의를 계속 비토하는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롭지 않다. 다만 정치권이 제시하는 수단으로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는 유가족이 홀로 결정하지 말고 국민의 판단을 묻는 절차를 밟았으면 좋겠다. (…) 둘째, 세월호 진상 규명의 두 경로를 분화시키면 좋겠다. (…) 사법 절차는 전문가에게 맡기되 이를 감시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가칭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유가족 국민 검증위원회’ 같은 공적 기구의 한시적 법제화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기구의 공적 위상과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유가족이 추천하는 인사를 국회나 대통령이 위원회의 장으로 임명하는 절차를 밟게 할 수 있다. (…) 마지막으로, 매우 어렵지만 귀중한 지혜는 유가족의 역할을 제도권에 대한 불만, 항의, 감시의 ‘소극적’ 기능으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의 건설을 위한 봉사의 ‘적극적’ 기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 새로운 출발은 생활현장에서 위험을 청취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풀뿌리 운동이 전국을 잇는 인터넷 소통망으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이들이 정부, 지방자치단체, 유관 조직(기업 등)에 압력을 넣고 이들의 신속한 호응을 이끌 때 변화의 시너지 효과는 가시화된다. 세월호 유가족은 이 운동을 이끌 수 있는 도덕적 힘을 가지고 있다. (…) 안전사회 건설은 조그만 정책 분야가 아니다. 국가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우는 일이다. (…) 세월호 참사는 그 필요성을 일깨웠을 뿐 아니라 이것을 이끄는 에너지를 내장하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이 에너지의 제도화에 번번이 실패했다. (…)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열쇠도 결국 유가족이 쥐고 있다.”

-유가족의 지혜, 세월호 정국 풀 수도 있다(중앙일보 ‘시론’ㆍ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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