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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상임위원회나 국정감사를 보면 국회의원들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에 장관이나 기관장들이 막힘 없이 대답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해당 부처가 담당하는 업무만 해도 수백~수천 가지일 텐데 그 많은 업무를 어떻게 그렇게 속속들이 꿰고 있는 걸까요. 돌발 질문을 받고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히는 장관들도 없지는 않지만요.

장관들이 비교적 여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건 사실 100% 해당 업무 담당 공무원들의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해당 부처 공무원들이 의원실에서 미리 예상 질문을 구해 ‘정답’을 만들고, 장관에게 사전 브리핑까지 해주니 말입니다. 장관은 노트북 화면을 보며 완성된 답변을 읽기만 하면 됩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11차 재정관리협의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대형 신규 공공투자사업의 사업성을 사전 검토하는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선 방안과 재정사업군 심층평가 결과 및 지출효율화 방안 등이 논의됐다. 연합뉴스

하지만 공무원 입장에선 답변 준비를 하는 게 보통 고생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질문이 나올 지 예측할 수 없으니 국회 질의 날짜가 다가올 때마다 전 부서 공무원들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미리 질문지를 입수하기 위해 간절히 부탁하는 공무원들의 애를 태우다 밤 늦게, 심지어 당일 날 새벽에서야 질문지를 넘겨주는 의원실도 있습니다. 특히 송곳 같은 질문으로 정부를 견제해야 할 야당 의원실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장관의 국회 답변 전날이면 사무관(5급)들은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입니다. 다음 날도 맘 편히 쉴 수 없습니다. 돌발 질문이 나올 지 모르니 졸음을 참아가며 질의를 쭉 모니터링 해야 합니다.

그런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이런 관행을 일부 개선하겠다고 기재부 공무원들에게 공언했다고 합니다. ‘질문지를 오후 10시까지 구하지 못하면 퇴근하라, 답변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담당 과장이 이른 아침에 답변 내용을 장관에게 일일이 브리핑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개선안 내용입니다.

기재부 공무원들은 호응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를 ‘밤 10시의 기적’이라고 표현한 한 공무원은 “역시 정치인 출신이라 사람 마음을 사는 법을 아는 것 같다”며 전임 부총리의 ‘소심함’과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잡무가 줄면 공무원들이 정말 필요한 대국민 서비스에 좀 더 에너지를 쏟을 수 있으니 반길 일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된 지 오래인 국회 질의의 민낯은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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