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욱의 재즈 너나들이]

영롱한 색채감은 드뷔시의 피아노 작품을 접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녀의 타건 속, 밀착하는 역동감은 자신의 몸 속에 흐르는 피의 7할은 재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남는다. 피아니스트 이선지에게는 여러 존재 양태가 오버랩 되어 있다. 피아니스트, 작곡가, 리더, 프로듀서 …. 한국에서 재즈 한다는 것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며 즐거이 감내해 가는 그녀를 보며 재즈의 미래를 어렴풋이 감지하는 것은 나만의 소회일까.

맨 처음에는 언뜻 잡히지 않았다. 프랑스의 천재적 피아니스트 미셸 페트뤼시아니의 재즈를 처음 듣고 났을 때의 기분 같았다. “저는 피아노 칠 때 어떤 그림 아니면 이야기를 모티브로 잡아요. 영화 같은 색채감을 떠올리며…..제 이야기를 제 식으로 표현하는 거죠.”재즈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헛헛하다. 그래서 당신의 음악은 재즈냐고, 단도직입했다. “즉흥 연주가 강해요. 그래서 (제 음악은)재즈예요. 또 스탠더드보다는 제 곡을 많이 연주하죠.”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라기보다 자신감이 승하다. “나는 내가 만들고 싶어하는 선율을 최우선으로 한다. 당초 나만의 표현 방식으로 재즈를 택했듯, 앞으로도 대중적 코드를 의식하지 않는 재즈를 해나갈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서 재즈 공부하던 시절, 스승이 남겨준 말을 들려 주었다. “백 번을 연주해도 매번 다르게 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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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피아니스트 이선지

광주 전남대 불문과 출신이다. 대학 시절 교내 록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재즈를 알게 되었다. 록 정서와의 괴리를 쭉 느끼던 그녀, 졸업하고는 서울예대에 입학해 팝과 펑크에 매달렸으나 항상 끝에는 재즈란 게 있었다. 그러나 재즈 선생은 없던 때, 졸업 후 연주 동료들 만나 나름의 재즈 트리오 활동으로 허기를 달랬다.

“처음은 무명의 재즈 트리오였어요. 100%, 리얼 북에 있는 스탠더드들만 연주했죠.” 그것들만 하다 보니 그 많은 곡들이 그게 그거로 느껴졌다. “저는 아이디어가 막 솟아나는 유형이거든요.” 한마디로 답답했다는 얘기다. 동덕여대 대학원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던 것은 재즈적 어법에 의한 작곡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나름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결국 미국행. 2005년부터 3년 간 있으면서 버클리 음대에 한 학기 다니고 나머지는 NYU(뉴욕주립대)재즈스터디 과에서 공부했다. 피아노에 랄프 알리시, 작곡에 길 골드스테인 같은 좋은 선생들을 만났던 곳이다.

프리 재즈 전문가인 알리시에게서는 즉흥과 작곡을 배웠다. 코드 진행에 구애 받지 말고 직관적으로 들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발전해 나가는 방식은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멜로디와 코드에서의 관습적 진행 벗어난 재즈 안에서의 자연스런 흐름이죠. 무질서가 아니라.”그는 이국의 제자가 첫 앨범 낸다는 소식에 실질적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8월 사천 재즈 워크샵에서 그들은 만났다.

2008년 한국에 본격 정착한 이래, 그녀는 2년 만에 한번 꼴로 앨범을 냈다. 음반 시장은 죽었다는 한국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강단 있게 그 작업을 추진해 온 이유가 있다.“저의 재즈가 한국적 재즈의 정서와 이질감이 있을지 몰라도 팬이라 자처해 온 소수의 사람들이 소중하기 때문이죠.”.

이후 발표해 온 그녀의 앨범은 각각 독특한 색깔로 인상을 심어왔다. 베이스에 정용도, 드럼에 샘 피클러가 참여한 2집은 재즈에서 거의 접할 수 없는 첼로가 커다란 느낌표를 찍었다. 가을을 노래한 ‘Fallen Sun’을 만나 첼로 주자 최정욱은 서정적 연주를 펼쳐 보였다. “스윙보다는 멜로디의 서정이 더 중요했으니까요.”

2012년의 3집 ‘Soar’는 색소폰, 그것도 알토 색소폰을 두 대 각각 좌우에 배치한 편성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따뜻한 색소폰 소리가 필요했어요.” 알토 두 대가 동시에 연주하는 ‘Soar’의 경우, 알토와 테너 색소폰의 듀엣보다 훨씬 짙은 서정미를 풍겼다. 이 작픔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 앨범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의 4집 ‘국경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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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가이 등 기존 레이블에서 앨범을 냈으나 4집은 자체 제작이다. 마스터링까지 그야말로 일체의 작업을 혼자 총괄한, 야심작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앨범이 나오고 나서부터였다. 온 ? 오프 음반 시장의 침체로 야속하도록 잠잠했다. 그야말로 침묵의 봄.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그녀는 출발하기로 했다. 지난 6월 첫 공연을 가졌던 미술관 콘서트는 새 희망이다. 대림미술관에서 이번 앨범 참여 멤버들과 벌였던 ‘재즈 피아니스트 이선지와 함께 하는 Pub Night’. 캐주얼한 파티 분위기의 무대가, 그녀는 “너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를 정의하는 여러 아이덴티티 중 가장 힘든 것이 있다. 바로 리더로서의 그것이다. “n분의 1이 아니에요. 함께 나아가는 방향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죠.” 방향 제시라니? “제 곡들로 이뤄진 앨범이므로 큰 그림을 제시하고 멤버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거죠.”그 어떤 작업보다 인간적 유대를 전제되어야 함을 안다. “오랜 친구들이라….”.

그녀의 재즈는 일견 대단히 서구 지향적 정서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껏 발표된 음반들에 국한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남부럽지 않게 서구적 정서로 음악을 해 온 그녀는 5집을 이야기하며 한국적 정서를, 드디어 이야기하기 하기 시작했다.

“배운 것들이 미국의 정통 재즈여서 지금까지 작품의 방향이 그랬는데, 이제는 우리를 표현하고 싶어요. 굳이 국악적 어법을 차용하지는 않더라도. 미니멀한 구성으로 했으면….” 편린일지라도, 한국적 음악 요소를 재료로 쓰겠다는 것

판소리나 첼로와의 협연처럼 기존 재즈의 어법을 넘어선 데서 가능성을 본다. “그런 게 좋아졌어요 여백 속의 풍부한 표현력, 여백 속의 역동성….”그녀가 생각하는 한국적 정서란 “여백과 한”이다. 재즈적으로 절묘하게 겹친다. 여백이 스윙이라면, 한은 블루스 아닌가!

9월 5일 오후 8시 합정동 폼텍웍스홀에서의 무대는, 아끼는 곡 ‘Soar’라는 말처럼 그녀를 한번 더 솟아오르게 할 것이다. (02)941-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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