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는 사회의 민낯이다. 통계라고 늘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통계는 담론보다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경우가 많다. 올해 들어 특히 내 시선을 끈 통계는 아래 두 가지다.

2월 모바일 설문조사기관 두잇서베이가 인터넷과 모바일 두잇서베이 앱 사용자 5,01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다시 태어난다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56.9%)라는 응답이 ‘태어나고 싶다’(43.1%)라는 응답을 추월했다. 그리고 7월 참교육연구소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서울ㆍ경기ㆍ인천에 거주하는 고교 2학년생 1,05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내가 위기에 처할 때 국가가 나를 지켜 줄 것이라는 믿음’이 세월호 참사 이전 46.8%에서 7.7%로 하락했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본다’고 했듯 두 통계는 우리 사회의 우울한 현재를 생생히 보여준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좋은 일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4대강 사업과 통일대박을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이 가져온 경제적, 생태적 이익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기 어렵다. 매년 4대강 주변 시설물 유지보수비로만 500억원이 투입된다고 하니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다. 통일대박 역시 말은 그럴싸한데 군사적 긴장이 이렇게 높은 상태에서 어떻게 대박을 터트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복권을 샀다고 해서 당첨이 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집단적 우울에 빠진 데에는 정부가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조직들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정권교체에 실패했더라도 야당의 경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127석과 48.0% 득표율을 얻었다. 이 정도의 지지라면 정부 정책을 압박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정치력을 발휘해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었으련만 최근 야당에 대한 실망이 정부와 여당에 대한 불신보다 외려 더 커 보인다.

한 때는 시민사회가 희망의 거점이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 시민사회는 ‘보수적 시민사회 대 진보적 시민사회’의 구도가 공고화됐고, 거의 모든 사안에서 정치사회 못지않은 대립과 갈등을 반복해 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를 보라. 처음에는 전 국민이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지만, 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나오는 막말, 맞불시위 등은 우리 사회 미래는 물론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마저 들게 한다.

통계의 사회학에 대비되는 ‘느낌의 사회학’이라는 게 있다. 느낌의 사회학은 일종의 직관의 사회학이다. 느낌은 담론보다 논리가 떨어지고 통계처럼 사실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때때로 느낌은 담론과 통계에 앞서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의 느낌은 어떤지 궁금하다. 우리나라가 다시 태어나고 싶은 사회인가.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어떤 세대라 하더라도 쉽사리 긍정적 답변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분명 ‘사회의 위기’다. 사회의 위기는 사회통합의 위기다. 사회통합의 위기란 집단으로부터 소속감을, 제도로부터 신뢰를 부여받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위기의 사회통합이 가져오는 것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통찰한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나는 홀로 소멸하게 된다’는 무기력과 고립감과 두려움이다. 내가 속한 국가가 나를 지켜줄 수 없다면, 그 사회는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를 비관적으로만 보려는 게 아니다.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이런 사회의 위기가 1997년 ‘경제 위기’에 비견할 만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앞서 인용한 통계로 돌아가면,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비관적 의식이 젊은 세대일수록 높다는 점이다. 더불어 우려스러운 것은 위기 관리의 실질적 주체인 정부와 정치사회의 위기 대처 및 문제 해결 역량이 상당히 취약해 보인다는 점이다. 사회는 개인을 보호해야 한다. 정부를 포함한 정치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사회의 보호’를 위한 정치의 근본적인 자기반성을 요청한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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