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2. 유모차 부대

요즘 어디를 가더라도 웬만하면 '혼자'다. 백화점 문화센터를 가도, 아파트 놀이터, 주민센터 어린이도서관, 구립 장난감 놀이방에 가도 아빠는 나 혼자다. 멋쩍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잠자코 있는 핸드폰을 꺼내 손가락을 놀리며 바쁜 척한다. 공사다망 중에도 아들을 위해 이렇게 행차했다! 정도의 의미가 되겠지만, 실제론 시간이나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는 정도다.

혼자인 아빠지만 옆에는 아들이 있기 때문에 외로운 정도는 크지 않다. 물론 아직 말은 통하지 않는다. 우! 아! 오! 우~아! 정글북 수준의 대화지만 아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힘이 된다. 덕분에 내가 아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무슨 몸짓을 하더라도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자상한 아빠'임을 웅변하는 제스처가 된다. 물론 아빠의 재롱에도 무표정한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여기서 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따금 '우리 남편도 저랬으면…'하는 엄마들의 부러움 실린 시선이 느껴질 땐 어깨가 으쓱거린다. (일반 아줌마들과 달리 현재 육아 중인 아줌마들 사이서는 '아빠의 육아휴직’이 환영받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은 채워지지 않는다. ‘어디 육아 아빠 없소?’

유모차 부대 주요 거점 중의 하나인 동네 공원 분수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들은 바닥분수를 보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나는 멀찌감치 그늘에 앉아서 봤음 싶지만 아들은 아빠 손을 잡고 재촉한다.

사실 이런 육아 고독은 육아휴직 전부터 예상했다. 양때구름처럼 몰려다니는, 애 키우는 엄마들 모임에 합류하지 않고선 육아가 힘들다(기자들 모임인 '꾸미'에 들지 못하면 눈뜨고 낙종하는 것처럼!) 아직 말 못하는 아이와 두 달만 생활하다 보면 혀에 곰팡이가 슬고 턱이 무기력해지며 결국엔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 강인한 정신무장을 주문한, 예방주사 성격의 조언이었을 텐데 직접 부딪혀보니 겁주기가 아니었나 싶다. 두어 달 겪어보니 유모차 부대는 친절했고(아직은!) 폐쇄적이지 않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밖으로 나가면 내 눈에는 아들 또래의 아이들만 보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유모차에 다리 포개고 앉은 아들도 제 눈높이에 있는 또래 아이들에게 대단한 관심을 표한다. 유모차 밖으로 손을 내저었는데 내가 무심하게 그를 지나치면 고개를 밖으로 빼돌리곤 소릴 내지를 정도다. 후진 기어를 넣고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해외여행 중에서도 “몇 개월이에요?”는 요긴한 인사말이다. 아들 또래의 엄마 아빠들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된다. 지난달 미국여행 중 머물던 동네 몰에서 만난 13개월의 엠마와 함께. 그들의 대화는 “우~와” “후~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면 통성명까진 아니더라도 상대 유모차 차주와 인사를 하게 된다. 이때 첫 인사말은 “몇 개월이에요?”다. 그러면 그에 대한 답이 돌아오고, ‘오, 우리 아들이랑 같은데 더 커 보이네요. 엄청 귀엽네요’정도의 답이 간다. (이건 미국에서도 통하더라. 그러니까, 육아 어른들 사이의 글로벌 인사말 되겠다) 대화가 여기서 그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엄마 아빠 손 안 잡고 걷느냐, 뭘 먹이느냐, 얼마나 먹이느냐, 애기 이름은 뭐냐, 어린이집은 다니냐, 어디냐, 거기 어때요, 낮잠은 잘 자느냐, 얼마나 자요, 우리 아들은 공만 보면 환장하는데… 몇 분간의 대화가 이어지고 나면 다음 인사는 "○○○엄마 안녕하세요?”가 된다. (동네 유모차들은 약속을 하지 않아도 또 만나고 또 만나게 된다. 어린이집이 끝날 무렵, 해가 기울어 그늘이 지기 시작할 때, 분수대 가동 5분 전 등 시간대별로 모이는 장소가 있다)

동네 나들이 횟수가 누적되면서 육아 엄마들만 가까워지는 건 아니다. 일주에 한번 마주칠까 말까 하던 친절한 앞집 아주머니는 핸드폰 번호까지 주고 받는 사이가 됐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일곱살 재욱이는 가장 반갑게 인사하는 친구가 됐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사람들 자리엔 새로운 사람들이 앉고 있는 셈인데, 희귀동물에게도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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