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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재발견… 재즈-클래식 장벽은 없었다

입력
2014.08.2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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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발견한 재즈는 이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경로에 깊이 관여했다. 그 깊이와 속도는 급진적이며 근본주의적이다. 화제가 됐던 독일 베를린필하모니의 초청 독주회보다 더 인상적인 사건일지 모른다.

촉망 받는 클래식 피아니스트 최영미(사진)씨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재즈를 연주한 것은 지난 3월 올림푸스홀에서였다. 생애 최초의 공식 재즈 공연작은 그러나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키스 재릿의 걸작 ‘쾰른 콘서트’. 피아노 한 대만으로 재즈적 어법을 망라한 이 작품을 재즈 뮤지션조차 무대에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낯선 곡을 익히기 위해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를 한 달 동안 사사하는 가욋일까지 감수했다.

“올림푸스홀 연주 당시 악보는 전설적인 ‘쾰른 콘서트’의 3부였어요.. 코드만 있고, 아무런 지시어가 없이 주제의 멜로디 라인만 적혀 있는 악보였죠(필사본의 형태로 멜로디 라인과 코드 진행만 명기돼 있는 그 같은 악보를 재즈에서는 통상 ‘리얼 북(real book)이라 부른다).” 무수한 지시어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클래식 악보에 비하면 너무나 단순하다. 즉 연주자에게 많은 재량권을 부여한다. 클래식 악보에만 익숙한 그가 우선 느낀 것은‘자유의 망망함’이었을 법도 하다.

“재즈로 작곡을 꼭 하고 싶다. 재즈는 내게 너무나 즐거운 소풍이다.”죽을 때까지 클래식의 새 레퍼토리를 발굴해 가겠다는 다짐도 함께 한다. 연주의 즉흥성을 중시하는 재즈의 특성은 클래식적 관행에 너무나 익숙한 그에게는 많은 부담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음악적 사고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계기였다. “재즈적 리듬감에 집중할 거에요. 블루스 리듬, 스윙 리듬 같은….” 피아노의 타악기적 특성에 눈뜬 계기이기도 했다는 말이다.

클래식에 대한 기존의 통념도 더불어 구조 조정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쇼팽이 재발견되었다. “쇼팽의 혁명성에 놀랐다. 최근 폴란드의 박물관에 가서 그 사실 발견하고, 너무나 흥미로웠다.”자기 곡을 연주할 때마다 쇼팽은 다르게 연주했다는 사실이 그것. “쇼팽이 변화를 즐겼기 때문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연주란 곧 작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재즈적 즉흥을 클래식쪽에서 접근하니 저 같은 답안이 나온 것이다.

최근 제자들과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을 찾았다. 쇼챙이 1810년 연인인 조르쥬 상드와 3개월 동안 머문 방에서 그는 재미있는 전시물을 발견했다. 특히 곡목부터 ‘즉흥(Impromptu)’인 작품은 그 발상이 재즈와 흡사했다. 현재는 클래식이라 분류되어 엄격히 연주되는 음악도 사실 지어진 당시에는 매우 자유로웠을 것이라는 생각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매번 연주할 때마다 서로 다른 재즈의 문법은 결국 클래식의 작곡 행위와 맞먹는다는, 재즈적 관행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이다. 그것은 결국 연주자인 자신에게 많은 영감과 지평의 확대로 다가왔다. “재즈적인 악기에 대해 더 알고 깊은 욕구가 생기더군요. 특히 더블베이스, 색소폰이나 클라리넷 같은. 모두 이전에는 관심이 가지 않던 악기들 이었는데….”.

상당히 뒤늦게 발견한 재즈적 어법이 그간 몸에 배인 음악 어법과 충돌한다던가 힘들지는 않은지? “서양 음악이라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그게 제겐 큰 힘이에요.”그러면서 그녀는 늦깎이 재즈 피아니스트 에디 히긴스를 이야기했다.

칠순 념어서야 인정 받은 재즈 피아니스트다. 1932년생인 히긴스는 그의 나이 70에 가까운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비너스 레이블에 몸담으며 말년의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인생을 볼 때, 공교롭게도 이 시기가 진정한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절정의 감각과 연주를 뽐냈으며 음반 판매량도 최고의 성적을 유지해 갔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카푸스틴(77)에게는 보다 찬근감을 느끼는 듯 했다. 모스크바 음악원 재학 중에 재즈에 흥미를 갖기 시작, 1961년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이후 1972년까지 11년에 걸쳐 재즈 오케스트라로서 소련을 무대로 연주 여행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녀는 카푸스틴의 재즈적 작품들을 연주하고, 나아가 재즈 뮤지션들과의 협업도 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익숙한 형식은 아니다. “솔로 작업이 위주였지만, 이제 재즈를 만나 함께 음악 하는 기쁜을 알게 됐어요. 때로는 불편하지만 나에 대한 새 발견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기쁘게 받아 들이고 있어요.”

과거의 자신을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2003년에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의 랩소디에 의한 변주곡’을 재해석 작업이다. “색소폰과 다양한 타악기 등 재즈적 영향이 명백히 느껴지는 편성의 그 작품을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해보고 싶네요.”

엄밀히 말한다면 그녀는 클래식과 재즈의 중간 혹은 점이지대에 있다. 엄청난 힘과 기량이 요구되는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전곡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답게 그녀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내 색깔을 더 드러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즉 라흐마니노프, 쇼팽 등의 대곡을 위주로 하는 과감한 레파토리로, 저간의 평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계획이 그 하나다.

그리고 재즈. “이제 소위 실용 음악의 판도가 바뀌었어요. 재즈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음악이 됐죠. 특히 오디오 프로나 유튜브의 일반화 덕에 재즈가 조기 교육의 대상이 된 것 같아요.” 그러나 시작은 탄탄한 클래식적 기초여야 한다는 것은 그녀의 변함없는 소신이다. 그녀의 생각을 하나의 명제로 종합하자. “결국 재즈니 클래식이니 하는 구분 자체가 오류”라는 것이다. 느낌표를 몇 개 찍어주고 싶은 통찰이다.

앞으로 그녀는 학생들에게 과제곡으로 재즈도 낼 요량이다. 거쉰의 ‘프렐류드’, 카푸스틴의 ‘변주곡’, 힌데미트의 피아노 모음곡 ‘Jazz Suite’ 등. 강의 계획서를 좀더 들여다보자. 하르트만의 ‘jazz toccata and fugue’, 미요의 ‘브라질의 추억’, 빌라로보스의 ‘아마존’, 스트라빈스키의 ‘Piano Rag Music’, 코플랜드의 ‘Blues(4곡)’, 거쉬인의 ‘프렐류드(3곡)’, 글래스의 ‘드라큘라 모음곡(5곡)’, 얼브라이트의 ‘The Dream Rag) ….

장병욱선임기자 aje@hk.co.kr

최영미의 재즈연주곡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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