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세계 어떤 지도자 방한보다 국민적 관심이 높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갖는 면모다. 즉위와 함께 그는 사회적 약자의 벗으로 지구적으로 사랑받아 왔다. 다른 하나는 위안과 평화라는 종교의 의미다. 교황은 신자가 12억에 달하는 세계 가톨릭의 수장이다. 상처 받은 사회인 우리나라에 교황이 던질 메시지를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가톨릭을 자생적으로 받아들인 드문 나라다. 목숨을 앗아간 모진 박해 속에서도 천주교도들은 신앙의 씨앗을 뿌렸다. 이 과정에서 내 시선을 끈 이들은 정약용 가족이었다. 함께 유배를 떠났던 약전은 둘째 형님이었고, 순교한 약종은 셋째 형님이었다. 누님이 한 분 계셨는데 매형은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었다. 큰 형님 약현의 처남은 이벽이었고, 사위는 백서 사건의 주인공 황사영이었다.

“진사로서 성균관에 들어간 후 이벽을 따라 놀며 서교(천주교)에 대하여 듣고 서교의 책을 보았다. 정미년(1787) 이후로 4, 5년 동안은 매우 열심히 서교에 마음을 기울였다. 하지만 신해년(1791) 이후부터 나라에서 천주교를 금지함이 엄중했으므로 마침내 천주교에 대한 마음을 끊었다.” 정약용이 60세 때 쓴 자찬묘지명에 나오는 구절이다. 천주교와 자신의 무관함을 이렇게 적고 있지만, 세례명이 안드레아였던 그의 사상 형성에 천주교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신해박해 이후 정약용이 천주교로부터 멀어진 반면, 정약종은 신앙생활에 더욱 정진했다. 천주교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를 써서 보급했고, 주문모 신부가 만든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세례명이 아우구스티노인 그는 신유박해(1801) 때 순교했다. 1984년 아내(유조이)와 둘째 아들(하상), 딸(정혜)이 시성(諡聖)된 데 이어 정약종은 16일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전 아래 첫째 아들(철상)과 함께 시복(諡福)된다.

신앙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학적 시각에서 정약종과 정약용의 삶은 우리 과거와 현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당시 천주교는 서교 또는 서학이라고 불렸듯이 서구적인 것을 상징했다. 천주교를 떠났던 정약용이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사상가였다면, 천주교를 지켰던 정약종은 ‘서도서기(西道西器)’의 종교인이었다. 사회ㆍ경제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서양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개인 윤리와 사회 질서를 위한 정신적 가치에서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의 우위를 판단하긴 쉽지 않다.

오래된 ‘아시아적 가치’ 논쟁을 반복하려는 게 아니다. 두 형제의 서로 다른 선택의 길을 돌아보며 우리가 일궈온 근대화의 명암을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개항, 식민지, 해방, 분단,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향해 우리 사회는 쉼 없이 달려왔다. 문제는 현재다. 지난 50여 년 동안 모범적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했다고 자부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은 바로 지금 크고 작은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들에는 빈곤ㆍ실업ㆍ상대적 박탈감 등 제도에서 비롯된 상처도 있고, 자살ㆍ우울증ㆍ폭력성 등 마음에서 비롯된 상처도 있다.

4박 5일의 일정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은 상처 받은 우리 사회에 치유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면담은 그런 기대를 높인다. 하지만 사랑과 치유의 주체가 교황이 아니라 우리 자신임을 자각해야 한다. 낡은 제도들이 온존하는 상황에서 마음만을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그 어떤 제도의 개혁과 혁신 또한 제대로 이뤄낼 수 없다.

서로 다른 신앙의 길을 선택했지만, 정약종과 정약용은 인간의 평등과 사랑에 대해선 생각을 같이 했다. 더 없는 애민사상이 담긴 정약용의 저작들과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쓰인 정약종의 <주교요지>는 평등과 사랑에 대한 두 형제의 열망을 증거한다. 인간은 누구이고, 사랑은 왜 중요한가, 또 우리는 어떤 가치를 갖고 살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4박 5일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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