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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는 악역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14.08.0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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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설렜다. 돌고 돌고 돌아야만 하는 경찰서를 잠시나마 벗어나 대형참사의 현장을 취재한다는 사실은 견습기자로서 큰 경험이기 때문이다. 설렘은 짧았다. 6시간을 달려 내려간 진도의 고요함은 설렘을 밀어내고 묵직한 긴장감을 불러왔다. 참사 54일째인 6월 8일, 진도에는 12명의 실종자 가족만이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족을 잃은 이들의 표정과 몸짓은 지쳐 있었고 나는 그 기분을 헤아린다고 말할 수조차 없었다. 취재진과 자원봉사자들이 떠나간 빈 자리는 진도에 상실감을 더하고 있는 상태였다.

조용해진 진도만큼 실종자 가족들 역시 침묵했다. 가족을 잃은 이들이 하고 싶은 말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팽목항에서 처음 마주한 실종자 가족인 민지네 이모, 고모와 엄마는 바다를 향해 민지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민지야 오늘은 꼭 돌아와! 엄마 아빠가 기다려.” 힘껏 불러봤지만 울음 섞인 목소리로 끝났다. 나는 한 걸음 뒤에서 기자의 숙명대로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한국일보 기자입니다. 제가 어머니 심정을 헤아릴 수 없겠지만 몇 마디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할 말 없어요. 가주세요.” 나는 아무리 정중해지려 해도 정중할 수 없었다. 자식을 잃고 주검조차 찾지 못한 부모에게 자식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내 질문이 가족들의 슬픔을 터뜨려 버릴 것만 같아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실내체육관에서 만난 모질기로 소문난 한 어머니의 “세월호? 사람들이 다 잊었어요. 이제 뉴스에도 잘 안 나와요. 그리고 언론은 반성해야 해요. 생때같은 애들이 죽은 것에 언론도 책임이 있어요”라는 말에 반문하기 어려웠다. 그때 처음 ‘기자’라는 단어에 죄책감을 느꼈다. 불신과 절망에 빠진 가족들에게 나는 어쩔 수 없이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세월호 사고라는 비극에서 악역을 맡은 것 같았다.

광화문 세월호 집회 때 있던 노란 리본 조형물이다. 집회, 기자회견 등 견습기자 중에 유난히 세월호 관련 취재에 많이 다녀왔다.
광화문 세월호 집회 때 있던 노란 리본 조형물이다. 집회, 기자회견 등 견습기자 중에 유난히 세월호 관련 취재에 많이 다녀왔다.

그렇지만 세월호 기획을 위한 취재는 꼭 필요했다. 가족들의 말처럼 남은 실종자 12명은 잊혀지고 있었고 수색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대참사가 이토록 쉽게 잊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남은 실종자 가족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 일이지 않나. 이런 내게 함께 간 선배는 “기획 기사는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한국일보가 가족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 말에 가족의 아픔을 건드리는 악역이 아니라 기사로 그들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생각이 바뀌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계획이 섰다. 우선 천천히 그리고 공손하게 가족들의 시야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매일 오전 7시에 실내 체육관에 도착해 일어나는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새벽 1시까지 체육관을 맴돌며 눈을 맞추며 서로 익숙해지려 했다. 졸졸 뒤를 따르기보다 느리게 함께 걸으며 말을 건넸다. 시간이 지나면서 존재가 각인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아침마다 “어휴,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라고 말을 건넸다. 그제서야 왜 한국일보 기자가 4명이나 내려왔는지 두 달 기획기사의 의도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할 수 있었다.

할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고사하던 다윤이 아버지 역시 4일이 지나서야 늦은 밤 간신히 인터뷰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쓰고 다니는 모자가 좋다며 가져간 예쁜 막내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듣는 내내 뭉클했고 수학여행 가기 전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아직 찾지 못했다며 온라인으로 받은 사진을 내게 보여줬을 땐 나도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가족들과의 인터뷰는 대개 오후 11시가 넘어 시작해 다음날 오전 2시쯤 끝나곤 했다. 늦은 밤 가족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때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결국 진도에 있던 모든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다윤이 아버지가 건네주신 가족사진은 기사 정중앙에 자리 잡아 가족들의 진한 슬픔을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기자는 때론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이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끌어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럴 때마다 기사가 가진 대의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상대방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진솔하게 다가가고 기사의 의도를 진심으로 전할 때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은 줄어들고 악역이 아닌 선한 역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생전 처음 방문해 열흘을 묵고 온 진도의 풍경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족들의 지친 표정만 생생하게 기억날 뿐이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있는 실종자들이 하루 속히 돌아오길 바란다. [견습 수첩]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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