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대형 화재사고가 많았던 5월. 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가 전남 장성에서 발생했다. 나는 28일 저녁 늦게 장성에 내려갔고 그 이튿날 새벽 홍길동체육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로 향했다. 오전 9시 20분쯤 아직 분향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불쌍한 아부지 살려주세요. 좋은 데 모신다고 여기 왔는데.” 유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분향소의 정적을 깼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50대 이상 고령의 노인으로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다.

유가족들은 영정사진 앞에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버지를 잃은 막내딸은 울다 실신해 실려나갔다. 이런 큰 사고현장에 와본 적이 없던 나는 목놓아 우는 유가족들 앞에 서서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랐다. 스케치를 해야 했는데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의 얼굴과 행동, 분위기를 남일 보듯 관찰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지난 5월 29일 전남 장성군 홍길동체육관에 마련된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부둥켜 안고 눈물 흘리고 있다.

그날 오후 선배의 긴급 지시를 받았다. “야! 방화 피의자 김씨 집. 광주 가산동 XXX번지.” 택시 안에서 김씨가 평소 앓고 있던 질환, 평소 과격한 행동을 보였는지, 가족과 불화는 없었는지 등 질문을 수첩에 적었다. 하지만 한 낡은 주택 앞 빛 바랜 대문에 휘갈겨 쓴 주소를 보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바짝 긴장한 탓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런 끔찍한 사건 피의자 가족을 만나라니. 뭐라고 하지?’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초인종을 누를 수 있었다. 김씨 아내의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국일보 기잔데요.” 문이 열렸다. “어떤 분이셨나요?” 남편이 방화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김씨 아내와 마주 앉은 거실에는 참기 힘든 침묵이, 그것도 오래 지속됐다.

드디어 김씨 아내가 입을 뗐다. 김씨는 젊어서부터 손수건 한 장 잃어버린 적 없는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했다. 아내에게 가스 불 안 잠갔다고 잔소리 해대던 사람이었다. 그런 김씨가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중증 치매 환자가 돼버렸다고 했다. 김씨의 치매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요양병원 측의 설명과 다른 부분이었다. 김씨의 아내는 불과 얼마 전 검사에서 치매 말기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그 밖에도 김씨의 아내는 남편이 요양병원에서 한 번 도망쳐 나와 집으로 온 적이 있다는 중요한 사실도 말해줬다. 병원 측의 허술한 환자 관리 실태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김씨의 아내가 내 요구에 거절한 적은 딱 한 번, 내가 김씨의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였다. 없다고 했다. 실제로 거실 어디에도 김씨 사진은 없었다. 차마 김씨의 아내 몰래 굳게 닫힌 안방 안으로 들어가보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겨우 김씨 아내와 대화를 마쳤다. 오랜 시간 슬픔에 잠긴 넋두리를 들으니 진이 빠졌다. 김씨의 아내는 얘기 중 갑자기 울기도 했다. 우는 것까지 기록하고 있는 내 자신을 참기 힘들었지만 나는 기자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도 잘 넘겨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김씨의 아내는 그 와중에 나에게 점심상을 차려줬다.

전남 장성군 효사랑요양병원 화재현장 모습.

장성에서의 힘든 시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30일 오후 유가족들이 병원장의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며 화재가 난 요양병원을 항의 방문한 현장. 불이 난 별관 2층 병동은 온통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가만히 있어도 매캐한 냄새가 곰팡이처럼 피어 올랐다. 2층 계단을 올라서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침대와 담요들이 당시의 참상을 말해줬다. 병실 복도 입구부터는 출입이 통제됐다. “엄마 냄새 한 번만 맡게 들어가게 허락해 주세요.” 유가족들이 울부짖을 때도 난 옆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기록해야 했다.

‘나는 감정을 잘 통제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사고 현장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장성에서 보낸 3일, 화재사고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한 시간이 다음날,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힘들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의연해질 수 있을까. 굳은살이 박히듯. [견습 수첩]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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