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원자력협력협정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과 더불어 대표적인 불평등조약이다. 정부는 1973년에 발효돼 2016년 3월에 종료되는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을 금년 내에 마무리 지으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40여 년 전 만들어진 불평등 조항들이 얼마나 개선될지 속단하기는 이르나 새 협정문에 한미 양국이 원자력 문제와 관련해 전략적으로 협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최근 보도됐다.

한미 양국은 또 양국 간 산업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별도채널을 구축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사실상 합의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한국의 원전시설 규모와 위상을 고려하면 늦었지만 진일보한 평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협상 초기 때부터 양국 간 주요 의제로 제기된 농축과 재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껏 의미있는 진척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자칫 협상이 실패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농축과 재처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협상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됐을까?

첫째, 원자력협정 개정이 마치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와 잘못 결부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평범한 직장인인 필자의 지인들도 “이제 우리도 핵무기를 가지는 것 아닌가”하는 질문을 하곤 했다. 여기에는 핵무기를 만드는 핵심물질 생산이 농축과 재처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 한몫했다.

둘째,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이다. 한국은 이제 세계 4, 5위 원전 강국이 됐다. 그럼에도 핵심요소인 농축과 재처리에 대한 권한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비정상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는, 근거 있는 불만이 팽배하다. 국제원자력기구 규정에도 평화적 목적의 농축은 어느 국가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셋째, 일부 언론에서 농축과 재처리 여부를 협상 성공의 척도로 과도하게 부각시켰다. 정부와 관련 연구기관들도 여기에 암묵적으로 편승, 동의했다. 심지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본처럼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서도 독자적으로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재처리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지금까지 제기되고 있다. 핵무장이 아닌 핵주권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다수 국민들의 이런 인식의 근저에는 박정희 정권 시절 시도했던 핵무기 개발 염원의 인자(因子)들이 여전히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러다가 북한 핵무기 실험에 자극 받아 뒤늦게 터진 것이다. 60%가 넘는 핵무기 보유 찬성이 그 증거다. 그러나 원자력 협력과 관련해서 한미 간 신뢰는 동맹의 이름값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무늬만 비슷할 뿐 내용과 질은 천양지차다. 즉 동맹이라고 다 같은 동맹이 아닌 것이다. 철저하게 국익에 기반을 두는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과 이런 위계적 동맹의 복잡한 역학 구조를 우리만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심지어 미국의 전술핵 도입으로 동맹의 무게를 측정하자고 주장한다. 무모한 억견이다.

농축 및 재처리 문제는 한미동맹의 목구멍에 걸려 있는 뼈임에 틀림없다. 넘어야 할 산도 여전히 높고, 많다. 하지만 지금은 핵주권 깃발을 올릴 때가 아니다. 재처리를 통한 항구적 에너지원 확보라는 ‘플루토늄 경제’는 국내 원자력 매파의 낡고 오래된 깃발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한다는 것은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인식의 문제다. 플루토늄 경제를 고집하는 것은 그래서 비현실적이다.

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해당 기술을 구매하는 것이 기업의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다. 농축과 재처리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농축에 대한 구매 경로는 매우 다양하다. 게다가 재처리는 일부 논란이 있지만 파이로 프로세싱에 대한 양국 연구기관 간 공동연구가 이미 시작됐다. 사용후핵연료 포화시점과 관련해서도 여전히 논쟁 중이다. 따라서 공동연구 결과를 놓고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외교부를 포함한 관련 부처와 연구기관, 산업계 등이 협상 막판까지 조정(漕艇) 경기와 같은 팀워크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핵비확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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