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ㆍ책임 맡기되 넘어서지 못하게

기예ㆍ지식 대신 안목과 비전 살펴야

책임총리ㆍ인사청문회 고민 더 필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많이 회자됐던 얘기 중의 하나가 인사(人事)다. 오래 한 조직에서 근무하다 보니 인사를 당할 때도 있었고, 인사를 할 때도 있었다. 조직원으로서 조직 안에 자리를 잡거나, 한 사람을 한 조직의 장(長)으로 맡기는 일이다. 그럴 때마다 두 가지 이야기를 생각한다. 탈무드의 우화 한 토막과 일본 막부(幕府)시대의 한 에피소드다.

많은 하인과 재산을 가진 거부가 있었다. 그가 갑작스런 병환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하나뿐인 아들은 먼 외지에 장기 출타 중이었다. 아들이 돌아와 자신의 유언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동네사람을 모으고 자신의 유언을 공표했다. 가장 유능한 한 명의 하인(A)에게 나머지 하인들과 자신의 재산 모두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아들에게는 한 장의 편지를 부쳤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재산을 관리하던 A는 신이 났다. 거부가 잘 모르던 토지와 재물까지 목록을 철저히 작성하여 관리했다. 나머지 하인들에 대한 관리도 주인 못지않게 했다. 주인의 아들이 돌아와도 토지 재물 하인 모두가 자기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거부가 남긴 토지와 재산을 더욱 불어나게 했고, 나머지 하인들에게 더욱 열심히 일을 시켰다.

한참 후에 돌아온 아들은 빈털터리였다. 아버지가 생전에 보낸 편지에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만 나열했지, 재산에 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현자(랍비)를 찾아갔다. 함께 편지의 앞뒤를 꼼꼼히 살펴보았더니 은유적으로, 그러나 확실한 의미의 글이 한 마디 있었다. ‘A를 아들에게 준다.’

거부는 A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을 넘겨준다고 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었다. 재산 문제가 명시되지 않은 편지는 무사히 아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재물 토지 하인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재산싸움이 없었기에 혹시 모르는 아들에 대한 위해(危害)를 막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생전의 목표를 달성했다.

두 번째 이야기. 영주 휘하에 젊은 걸인이 부하를 자청하여 들어왔다. 당시 영주는 부하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 부하는 영주에게 유사시 목숨을 맡겼다. 당연히 부하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호되고 끊임없는 무사수업이었다. 헌데 이 걸인은 무사수업엔 도통 관심이 없었다. 단체훈련에 빠지고 개인수련에도 소홀했다. 그가 관심을 가진 일은 영주가 어떤 인물들과 만나며, 그들이 영주의 방을 나설 때 호감을 가졌는지 적의를 품었는지 등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특히 외국에서 오는 상인들의 행태, 그들이 갖고 드나드는 물품의 종류 등을 면밀히 살피곤 했다.

동료 무사들의 짜증이 폭발했다. 당시 흔한 관습대로 참수나 할복을 요구했다. 영주가 그를 불러 최후진술을 요구했다. “저는 장(長)이 되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무술을 연마하면 침식을 전폐하더라도 동료들을 앞지를 수 없습니다. 더구나 무예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일입니다. 장(長)이 되면 무술에 능한 무사들은 얼마든지 충원할 수 있습니다. 주군이 만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외국 상인들과 그들이 거래하는 물품을 눈여겨보면 현재와 미래의 주변국가 정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주는 그의 목숨을 붙여주고 영외로 추방하는 조치를 내렸다.

미천한 신분으로 일본열도의 우두머리가 됐고, 중국까지 통일하겠다며 조선을 침략했던 풍신수길의 젊은 시절 일화라고 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접고)집단과 조직의 장(長)이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을 잘 지적했다는 생각이다.

첫 번째 탈무드의 우화가 생각난 것은 이른바 책임총리 문제가 나왔을 때다. 모든 권한과 책임을 주었던 것은 A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결국 자신의 목적을 완전하게 마무리한 사람은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는 주인이다. 풍신수길의 일화가 떠올랐던 것은 장관들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였다. 세세한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 빈틈없고 정확한 기억력, 구석구석을 섭렵하는 섬세한 재능이 장(長)의 필수요건은 아니다. 갈등조율과 관계조정, 전후좌우 과거미래에 대한 안목과 비전이 더욱 소중한 자질이니 그것을 청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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