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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편법적이고 대책없는 쌀 개방 중단해야

입력
2014.07.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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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전면개방 문제는 난제 중의 난제다. 신뢰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다. 높은 관세율로 해결하기도 어려워졌다. 이미 고관세율을 내리기 위한 국제 조약이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한미ㆍ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고관세율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말하는 ‘관세화’(쌀 수입 자유화)를 하더라도 해마다 외국쌀 약 41만톤을 수입해야 하는 의무는 없어지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진행 중인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한국이 농업분야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면 쌀을 매년 약 20만톤씩 더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견해이다. 그렇게 되면 60만톤의 외국쌀을 해마다 수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지난 11일 국회 쌀 공청회를 앞두고 국회의 서면 질의에 대답한 내용이다.

이처럼 쌀 전면 개방은 어려운 문제이다. 어느 정권이 담당하더라도 험난한 난제이다. 그럴수록 투명하고 정직해야 한다. 쌀 문제 해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이다. 그런데 정부 스스로 신뢰를 깨버리니 안타깝다. 대표적인 것이 올 9월 말까지 WTO에 관세율을 통보해야 한다는 거짓말이다. 이 문제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 ‘세계무역기구 관세 양허표 수정 개정 절차’라는 이름의 조약 제1항에 나와 있는 문제이다. ‘조치가 완료된 후 3개월 이내에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내년 1월 1일부터 ‘쌀 관세화’를 하겠다면 내년 3월 31일까지 수정표를 외국에 통보해주면 된다. 국내적으로는 현행 행정절차법에 따라 올 11월 15일까지 관세율을 입법예고하고 이에 따라 내년 1월 1일에 시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쌀 수출국들은 한국의 쌀 관세율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일본도 국제법상의 일본 쌀 관세율표가 2001년 12월 15일 발효되기 전인 1999년 4월 1일에 국내법에 따라 약 778%의 관세를 붙여 관세화를 실시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정직해야 한다. 만일 정부가 대외적 서비스나 전술적 차원에서 올 9월에 미리 관세율을 통보하는 것이라면 국민에게 정직하게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 마치 한국이 9월까지 통보해야 할 국제법적 의무가 있는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

신뢰 없이는 해결 방법이 없다. 정부는 쌀을 전면 개방하더라도 쌀 농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과 대책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정부는 대책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 쌀 공청회에서도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대책을 준 것이 없다고 했다.

신뢰를 얻는 일은 국내 절차를 바르게 이행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행정절차법의 입법예고를 통해 쌀 관세화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국내 절차가 완료되기 전에 정부가 쌀 관세율을 다른 나라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안 된다. 행정절차법에서 규정한 국민의 의견 제출권을 깡그리 짓밟고 어떻게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국회도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쌀 전면 개방을 하려면 국회의 사전 비준 동의를 받은 후에 외국에 관세율을 통보해야 한다. 지금 외국 쌀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는 국민은 없다. 양곡관리법 때문이다. 그러므로 쌀을 누구나 수입하게 하려면 양곡관리법을 개정해야 한다. 양곡관리법을 이유로 민간의 쌀 수입을 막다가 이 법을 그대로 두고 쌀 수입 자유화를 할 수 있는가? 일본도 1999년 3월 31일 식량법을 바꿔 다음 달 1일에 쌀 수입 자유화를 시행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상식마저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7년에 우연히 양곡관리법을 미리 바꾸어 놓았다고 말한다. 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다고 말한다. 이래선 안 된다. 무대책·편법의 쌀 개방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정직과 소통의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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