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그들만의 법 잣대에 사회적 약자는 없었다

강철원 한국일보 산업부 기자

강철원 기자

2011년 8월이나 9월쯤이었다. LG전자 내부고발자이자 사내 왕따 사건의 피해자 정국정(51)씨가 기자를 찾아와 고현철(67) 전 대법관의 변호사법 위반 의혹에 대해 설명했다. 2004년 정씨가 낸 부당해고구제 행정소송을 기각했던 당시 고 대법관이 2009년 퇴임 후 법무법인 태평양으로 옮겨 정씨가 LG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 확인소송의 LG측 변호인으로 활동했다는 내용이었다. 소송형식은 달랐지만 같은 사건이었기 때문에 법관으로서 관여했던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는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충분했다.

하지만 당시 정씨의 말에 관심 있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결정적인 이유는 국내 굴지의 로펌이, 그것도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법률검토를 안 했을 리 없다는 막연한 믿음이었다.

당시 취재를 위해 태평양의 한 변호사에게 전화했던 동료기자는 “법도 모르면서”라며 면박을 당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그는 법원 출신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으로 꼽혔으며 승소율도 높고 언변도 뛰어났다. 변호사는 기자의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법률검토 충분히 했다. 정씨의 주장은 법을 모르는 사람의 일방적 이야기다. 이런 질문 자체가 법률가에 대한 모독이다. 법조기자로서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나”라는 대답이었다. “정씨는 쓸데 없는 문제로 소송이나 일삼는 사람”이라는 공격까지 서슴지 않았다. ‘유능한 전관 변호사’가 워낙 세게 나오는데다 당시엔 검찰 수사가 진행되지도 않았던 상황이라 결국 기사화하지 못했다.

자료사진. 한국일보 DB

그로부터 3년 후인 지난 3일 고 변호사는 검찰의 재수사 끝에 기소됐다. 사건 수임과 관련해 전직 대법관이 기소되기는 처음이다. 현직에 있는 한 젊은 판사는 “LG에서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처음 논란이 있었을 때 변호인 명단에 이름을 안 올렸으면 될 일을 왜 그렇게 무리수를 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탄식했다.

이 사건은 한국에서 가장 똑똑한 인재들이 모였다는 대형로펌과 전관들의 인식을 드러내 보인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법대로 사는 방식’이 실상은 법 모르는 사람을 얕잡아 보며 돈의 잣대만 휘두르는 것이었을까. 그러니 전관들의 고액 수임료 문제가 터져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당연한 보상’ 정도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고 변호사와 3년 전 기자에게 충고했던 변호사에게 묻고 싶다. 법의 권능을 존중한다면 정씨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변론할 생각은 없는지. 그리고 3년 전 제보를 받고도 기사화하지 못한 데 대해 정씨에게 사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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