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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은 '국가이다'의 최소한이다

입력
2014.06.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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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한국의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또한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지며 그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2014년 3월 현재 청년고용률(39.5%)이 외환위기 당시보다 1.4%나 낮고, 4명 중 1명 꼴로 약 110만원 이하의 저임금을 받고, 시간제 일자리 평균 급여가 67만원에 불과한데도 한국에서 헌법 정신은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최저임금이 전 세계적으로도 낮을 뿐 아니라 그마저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전체의 12.6%(약 230만명)이고 시간제 일자리의 경우 39.8%(약 76만명)가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일한다. 또한 체불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매년 30만명에 육박하며 액수도 1조원이 넘는다. 이 명백한 불법을 바로잡지도, 줄이지도 못하는 국가라면 존재 이유가 있을까?

지난달 심각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중소 도시의 사업주들 몇 분을 만난 적이 있다. “노동자가 몇 백원을 가로챘다고 해고까지 했으면서 왜 몇 십만원, 몇 백만원 임금은 체불합니까”라고 물었더니 곧바로 대답이 돌아온다. “회사가 어려우면 임금이야 늦게 줄 수도 있죠.” 불법도 기업 사정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대정부 질문에서 정부에게 최저임금 조차 주지 않는 명백한 불법이 횡횡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기업이 어려운 경우도 있고 감독인원이 적기도 하고…”라는 판에 박힌 대답을 한다. 국가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 없다.

대기업 본사가 편의점이나 가맹점 매출액의 30~60%를 가져가도록 그냥 둔다면, 인건비 덤핑을 강요하는 대기업의 다단계 하도급을 방치해 중소 영세사업장이 최저임금 조차 지불할 수 없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면, 대기업의 최저임금 위반이나 임금체불에까지 눈을 감는다면, 국가라고 하기 어렵다. 헌법도 사실상 사라진다.

국가도 헌법도 사라진 자리에는 시장과 이윤과 경쟁만이 남는다. 그곳에서 사람은 비용이거나 상품이거나 인적자본일 뿐이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은 학교만 졸업하면 비용취급을 당하고, 비정규직이든 시간제 일자리든 아무데나 가라고 강요 받는다. 학교에 다니는 이유조차 기업맞춤형 교육을 받기 위함이다. 이미 대한민국은 그렇게 바뀐 것이 아닐까?

최저임금은 ‘국가이다’와 ‘국가 아니다’를 가르는 최소선이다. 또 최저임금은 대한민국이 세월호 참사를 반복할 것인가 아닌가를 구분짓는 기준이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중하위 계층의 임금불평등이 약간 줄어든 이유가 최저임금이 오른 탓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최저임금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반드시 지급해야 할 구명조끼이다.

올해도 예외 없이 “최저임금은 지금도 과도한 수준이며, 더 올리면 영세중소기업 근로자의 고용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경영계의 주장 때문에 최저임금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가 아무런 진전 없이 끝났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이번만은 다르겠지’라고 기대했던 것이 과도했을까.

정부도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이 무사히 10대를 넘기고 20대가 돼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며 청년 알바로 전전해야 한다면, 30대에 접어들어 결혼도, 아이 낳기도 겁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40~50대가 돼 잦은 해고와 구조조정, 폭등하는 전월세값과 교육비 부담으로 하루에도 수십번 자살을 생각해야 한다면, 60대에까지 최저임금 미만 일자리라도 고맙다며 찾아 다녀야 한다면 정부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최저임금 위반을 바로잡는 것이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최소선 이다. ‘국가 아니다’라는 분노에 ‘국가이다’라고 답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정부가 다른 모습을 보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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