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영백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수학교육위원장ㆍ한양대 물리학과 교수

교육부가 세계적 추세인 융합적 교육이라는 사고의 틀에서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을 마련한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교육과정 개편인지도 모르겠다. 교육과정은 총론과 각론으로 이뤄진다. 총론은 어떤 교과들을 가르칠 것인가, 얼마나 가르칠 것인가를 정한다. 나라의 백년지대계를 위해 매우 중차대한 일이니 그만큼 신중히 결정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교육부의 행동이 미심쩍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4, 5개월 만에 끝내겠다고 작정을 하고 시작했다. 12개의 연구진을 구성하고 그 책임자들이 모여 교육부와 상의해 총론의 틀을 정한다고 한다. 그 책임자들 중 6명은 교육학 전공자, 6명은 교과교육학 전공자들이다. 모두 사범대학뿐이다. 교육의 내용을 정하는데 사범대학, 교육학과가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융합적 사고를 키우기 위한 문ㆍ이과 통합 교육과정 수립에 그들만 있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융합적 구성이 좋을 것이다.

초ㆍ중등 교육의 1차 수요자는 그 교육이 길러내는 학생을 받아들이는 대학이다. 부실한 과학교육은 대학교육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다. 최종 수요자는 대학 졸업생을 받아들이는 산업체다. 이 산업체가 잘 돼야 나라 경제가 산다. 그런데 교육부는 수요자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하고 완전히 공급자 마인드로 교육과정을 짜려는 것이다. 공급자 마인드로 운영하는 기업은 망하는 세상이다. 창조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교육 마피아’ ‘교육학 박사 천국 대한민국’ 이라는 곱지 않은 지적이 나온다.

공급자들이 최근 슬며시 내놓은 초안부터 걱정이다. 모든 과목 또는 적어도 과학과 사회의 비중이 같다고 표시했으나 역사 6학점을 숨겨놓았다. 이전 2009년 교육과정에 비해 사회는 강화하고(15→16시간) 과학은 약화시키는(15→10시간) 교육과정을 ‘문?이과 통합형’이라고 포장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과학의 비중은 1/10, 물리학의 중요성은 체육의 1/4, 음악의 1/2 정도로 돼 있다. 가슴이 답답해 온다.

과연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과학은 이 정도의 중요성밖에 없는 것일까? 국가 교육과정이 없는 미국도 국가수준의 표준을 제시하며 각 주를 설득하고 있는데, 역시 국어 수학 과학 3과목이다. 중국은 국어 수학 외국어에 비해 과학을 2배 정도 많이 가르친다. 이 나라들은 왜 이럴까? 답은 간단하다.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걱정하는 교육학자들도 사실 같은 생각이다. 버니 트릴링과 찰스 파델의 ‘21세기 스킬’에서는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 창의성과 혁신 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프로젝트 기반 학습, 탐구 기반 학습을 강조한다. 모두 과학 교육을 통해 가장 잘 키울 수 있는 역량이다. 이런 사고를 수용하려면 문?이과 공통 필수로 돼 있는 역사에 대응해 또 다른 문?이과 공통 필수인 과학 과목이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

미국은 과학 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1985년 ‘2061’이라는 76년짜리 프로젝트를 기획해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30년째 진행 중이다. 4년 만에 나온 첫 보고서 ‘모든 사람을 위한 과학’에는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 공학자 교육학자 등 150명이 참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과학 교육의 궁극적 흐름은 ‘모든 사람을 위한 과학’을 향해가고 있다. 초ㆍ중등 과정에서 비중 있는 과학 교육없이 어찌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우리는 너무 소수의, 그것도 교육 공급자들에게만 심각할 정도로 편향되게 나라의 중대사를 덜컥 맡긴 것은 아닐까? 4년까지는 안 되더라도 4개월은 너무 짧은 것이 아닐까? 이들이 과목 간 눈치보기 때문에 교육계의 전통적 나눠먹기 논리에 순응해 필수시간을 배정한 것은 아닐까? 이 질문 중 하나라도 “그래”라는 생각이 든다면 국가의 미래는 어두워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지금이라도 보다 많은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오래 융합적으로 고민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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