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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병실 유리창 굳게 닫혀... 유독가스 빠져나갈 길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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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병실 유리창 굳게 닫혀... 유독가스 빠져나갈 길 없어

입력
2014.05.2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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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전남 장성군 효사랑요양병원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의 용의자 김모(81)씨가 발화장소인 3006호에서 나오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화면. 문 사이로 불꽃이 보인다. 장성경찰서 제공
28일 오전 전남 장성군 효사랑요양병원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의 용의자 김모(81)씨가 발화장소인 3006호에서 나오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화면. 문 사이로 불꽃이 보인다. 장성경찰서 제공

치매환자 창고 방에 들어갔다 나온 후 불길 솟아

2층엔 치매환자 등 34명... 6명만 자력 탈출

치매 환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었던 그들에겐 탈출구가 없었다. 반드시 완치해 수용소 같은 병동을 벗어나 가족 품으로 돌아가겠다던 희망도 검은 연기가 삼켜버렸다.

28일 새벽 전남 장성군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 화재 참사 현장에는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마의 잔영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화재 발생 신고(0시 27분)후 6분 만에 큰 불은 잡혔지만 불길이 시작된 별관 2층 창고용 3006호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 버렸고, 복도 천장 곳곳엔 검게 그을린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3층짜리 본관 건물과 연결 통로로 이어진 별관 2층 병동은 화재가 나기 14분 전인 0시6분부터 불길한 조짐이 복도 폐쇄회로(CC)TV에 감지됐다. 취침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3002호실 환자 김모(81)씨가 병실과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이달 1일 뇌경색과 경미한 치매증상으로 입원한 김씨는 병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김씨의 ‘방황’은 곧바로 화재를 불러왔다. 0시11분 화장실에서 나와 병실로 들어간 김씨는 4분 뒤 담요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고 나와 침대시트 등 의료물품을 보관하는 3006호실로 들어갔다. 1분 후 빈손으로 빠져 나온 김씨는 주위를 살핀 뒤 자신의 병실로 들어갔고, 그로부터 2분20초 뒤 3006호실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0시23분 연기가 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2층 병실 9개 전체를 덮쳤다. 병실 입구엔 블라인드만 쳐져 있어 복도를 통해 들어오는 연기를 막지 못했다. 더구나 각 병실의 유리창은 환자 추락을 막기 위해 굳게 닫힌 상태여서 연기가 빠져 나갈 수 없었다.

33㎡ 크기의 3006호실에서 검은 연기와 유독 가스가 뿜어져 나왔지만 별관 2층 환자 34명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당시 별관에 입원중인 환자는 78명. 1층 환자 44명은 모두 대피했으나, 2층 환자 34명은 와상환자, 치매환자 등이어서 자력 탈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화재경보기가 울리자 병동 입구 간호사실 데스크에서 혼자 근무하던 간호조무사 김귀남(52)씨가 3006호실로 뛰어가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지만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던 유독가스에 쓰러지고 말았다.

화재 신고 후 4분 만에 도착한 소방대원들과 경찰관들이 2분 만에 불길을 잡고 구조에 나섰다. 소방대원들은 거동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침대를 병동 입구까지 밀고 간 뒤 환자들을 안거나 업고 건물 밖으로 빼냈다. 2층 입원 환자 중 스스로 병동을 걸어서 빠져 나온 환자는 6명뿐이었다. 나머지 28명은 유독가스에 질식해 이 가운데 20명이 숨졌고, 8명은 중경상을 입어 광주시내 병원으로 이송됐다.

구조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병원 측이 환자 관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 환자들의 손목을 묶고, 신경안정제를 과다하게 투여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유가족들은 “환자 손목의 줄로 묶인 흔적을 사진으로 찍었다”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이민호 전남 담양소방서장은 “소방대원이 가위로 환자의 손목이 묶인 것을 절단하고 구조한 일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장성경찰서 삼계파출소 정인철(47) 경위는 “당시 소방관들은 불을 끄는데 바빠 우리라도 먼저 환자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불 속에 뛰어 들었다”며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고 곧바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출입문을 열자 열기가 느껴졌고 복도에는 이미 연기가 자욱한 상황이었다”고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장성=최수학기자 shchoi@hk.co.kr 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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