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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대책 없이는 비극은 계속 된다

입력
2014.04.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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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세월호와 관련해서 연일 우리는 암담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사망자가 늘어 갈수록 슬픔과 낙담과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참사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사고를 당한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이다. 이들이 겪는 심리적 피해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 상처와 고통은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 10년 이상, 아니 평생 안고 살아야 할 고통일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불안 장애의 일종으로, 강력한 스트레스 사건 경험을 계기로 극심한 두려움, 절망감 등의 감정을 유발하는 장애이다. 이를 유발시키는 사건은 전쟁이 될 수도 있고, 자연재해뿐 아니라 총기사건이나 화재 같은 사고일 수 있으며 신체적, 성적 학대일 수도 있다. 이런 너무나 끔찍한 경험을 하고 나면 다양한 신체적, 심리적 장애가 나타날 수 있는데, 근육과 골격의 통증, 과도한 긴장감, 고지혈증, 비만 그리고 심혈관 질환과 같은 신체적 장애뿐 아니라 극심한 불안과 같은 심리적 장애 또한 심각하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는 다양하다. 보통 사건 후 3개월 이내에 나타나지만, 몇 개월 혹은 몇 년 후에도 밖으로 표출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사건 직후 바로 상담과 치료가 시작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장기ㆍ지속적으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PTSD는 연령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 지속적으로 공포를 경험하기도 하고 수면장애나 집중력 저하가 일어날 수 있다. 학교와 가정에서 비행 행동을 보일 수도 있고, 주변 친구들과 가족과의 관계에 아예 무관심해지는 등 대인관계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성장하게 되면 뇌와 호르몬에도 변화가 일어나 학습, 기억, 분노 조절과 같은 정서 조절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제대로 치료되지 않으면 더욱 심각하게는 공격성, 우울증, 식이장애, 성격장애 해리 장애 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즉각적인 상담과 치료에 들어갈수록 그 회복이 빠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어릴수록 회복이 빠르며, 어릴수록 내버려 두게 되면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PTSD에 대한 연구나 자료는 미비하다. 그러나 비교적 대처를 잘한다는 미국의 경우도 안정적인 장기대책이 마련되기까지는 한동안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2001년 미국의 9ㆍ11 사건에 노출되었던 5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다. 2003~2004년도에 PTSD 증상들을 보고한 사람들은 14%였던 것에 비해, 911사건 후 5~6년 뒤에는 19%로 증가하였다. 특히 이들 중 절반 이상(52%)이 테러 후에 적절한 심리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뉴욕 시에서는 뒤늦게 이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테러 사건 10년 뒤인 2011년 초, 뒤늦게 9ㆍ11 보건보상법이 오바마 대통령의 승인으로 통과되었고, 세계무역센터 보건 프로그램(WTC Health Program)이 수립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9ㆍ11 사건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감독하고 PTSD를 포함한 정신적, 신체적 문제들에 대한 치료 서비스들을 적어도 2015년까지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인 상처는 15년 이후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담과 치료는 급속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단기간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잊혀질 만하면 터지는 대규모 참사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장기적인 심리 지원을 위한 대대적 정책 혁신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비극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긴 울음을 토해낼 것이다. 경제발전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시급한 것이 국민의 정신건강이다. 이제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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