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 그냥 안철수라고 쓰자. '안철수 현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모두들 그렇게 부른다. 마치 인기인이나 스포츠스타를 대할 때처럼. "안철수가 달라졌다. 웃음이 없어졌고, 밝고 화사하던 모습이 사라졌다. 위로 멀리 바라보던 시선을 볼 수 없다. 어눌하지만 단어와 술어 하나하나에서 공감이 있었는데 아니다. 이제 여의도 정치인이 다 됐다." 어느 보통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40대 혹은 50대, 평범한 정치적 관심을 갖고 있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다.

안철수가 '안철수 현상'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2012년 서울시장 선거, 2013년 대통령선거에서의 일을 다시 언급할 계제는 아니다. 그 두 번의 선거는 안철수가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에 앉으면서 이미 하나의 켜로 묶여버렸다. 공동대표 이후 안철수가 기초공천 문제를 여론조사와 당원투표에 맡기겠다고 했을 때, 결론이 나온 후 기자회견을 했을 때가 관심이다. 정무적 판단에 미숙했고, 정치적 결단에 소심했다. 스스로 '안철수 현상'을 비껴간다면 그가 우리 정치에서 갖는 의미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

안철수는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비장한 결의를 밝혔다. "잠시 죽더라도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새정치의 길이자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이다." 감수하겠다는 '잠시의 죽음'은 기초선거 무공천을 고수하여 눈앞의 6ㆍ4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을 의미했다. '새정치의 길'은 실언을 일삼는 기존 정치행태를 벗겠다는 선언이었다.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은 이번 패배를 밑거름으로 2017년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다짐이었다. 정확히 2주일 만에 전제로 내세웠던 '잠시의 죽음'을 포기했으니 그 결과로 상정한 '새정치ㆍ수권정당의 길'이 허망하게 다가온다.

여론조사와 당원투표를 통해 자신의 결단을 바꾸려 했다면 진정 '비장한 결단'을 내렸어야 한다. 여론조사와 당원투표에 기대어 '죽음에 이르는 길'에 이끌려 가지 말고 '잠시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선택했어야 한다. 혹시 여론조사와 당원투표의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나올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면 다른 얘기지만, 그건 아닌 듯하다.

스스로 '안철수 현상'에 부응하기를 포기한 대목은 이후의 기자회견에서 읽을 수 있다. 당일 오전 약속했던 기자회견이 연기됐다. 내용에 대한 의견조율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은 했지만 취소인지 연기인지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오후 늦게 이뤄진 입장발표에선 '새정치'란 말이 완전히 사라졌다. '정치개혁'이란 말로 에둘러 갔다. '안철수=새정치'라는 현상을 스스로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입장의 요지는 "기초선거 정당공천은 폐해가 많다. 새누리당이 약속을 깨고 공천을 한다. 선거에서 우리만 괴멸을 당할 것이다.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지만, 정부여당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이어 "남들이 가지 않아 험하고 힘든 길을 가야 한다. 혁신의 선봉장이 되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앞뒤가 맞지 않다. 앞뒤가 맞으려면 "상황이 이러하니 나 안철수는 새정치를 위해 백의종군하며 '잠시의 죽음'을 택하겠다"고 했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기자회견이 이뤄지고 새정치라는 말을 쓰지 못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최근 수년 동안 우리 정치가 활기를 띠게 된 동인은 '안철수 현상'이다. 그것은 새로운 정치를 희구하는 분명한 실체이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안철수가 달라졌다고, 그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졌다고 '안철수 현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으며, 이미 안철수 개인의 상징을 넘어섰다. 이번 일을 계기로 6ㆍ4 지방선거에서 거대한 여권을 견제하게 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을 잠복시키는 쪽으로 작용한다면 손실이다. 안철수가 다시 달라지거나, 새로운 안철수가 나타나거나 '안철수 현상'의 실체는 잘 가꾸어져야 한다.

정병진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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