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큰 사고가 나지 말아야 할 텐데…. 20년 전 일본 도쿄 시내 한 호텔에 묵었을 때다. 자정이 넘었는데 멀리 불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가갔더니 웬 할머니가 손전등을 흔들고 있었다. 인근 공사장에서 길 옆에 철제 빔을 쌓아놓았는데 행인이 지나다 부딪힐까 봐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공사장의 고용인이라고 했다. 그 시간에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을 텐데도 그러고 있었다.

10여년 전 위싱턴 특파원 시절이었다. 주말이어서 교통량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도로 가운데 '공사 위험, 주의 바람'이란 팻말이 있었다. 가면서 보니 맨홀 뚜껑을 열어놓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만한 일을 하면서 2㎞ 전방부터 경고 팻말을 세워 놓았다. '우리라면 10㎙ 앞에나 팻말을 세우고, 나머지 1,990㎙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경찰이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건 원인을 발표했다. 부실시공, 관리소홀에 폭설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상됐던 내용이다. 1994년 10월 서울 성수대교가 붕괴됐다. 원인은 부실시공과 관리소홀에 하필 그 때 보슬비가 내렸다는 설명이었다. 이듬해 6월 서울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 원인은 부실시공과 관리소홀에 하필 그 때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는 설명이었다.

'하필, 그 때'를 생각해 본다. 부실시공과 관리소홀을 넘어 '하필, 그 때'라는 인식이 인재(人災) 가능성을 더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실시공과 관리감독 문제라면 우리의 기억력이 죄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의 안전관리에 '하필, 그 때'에 대한 관심과 기준은 그냥 말미에 덧붙여도 될 사안일까. 성수대교 사건에서 보슬비, 삼풍백화점 사건에서 고객 쏠림에 눈길이 간다면 경주 리조트 사고에는 폭설만이 '새로운 왜?'에 해당하는 것일까.

리조트 사고의 원인에 대한 어느 교수의 주장에 공감한다. 하필 그 때 재학생과 응원단의 박수와 함성, 초청가수의 공연 시작으로 소리의 볼륨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한다. 그는 "무대 쪽 천장부터 무너져 내린 점으로 보아 공진(共振) 현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진동에 민감한 기울기의 천장이 200톤에 달하는 쌓인 눈의 하중을 업고 들썩거렸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1831년 영국 멘체스트 지방 브로튼 다리가 행군하는 500여명 군인들의 규칙적 발자국과 군가 함성에 순간적으로 무너졌다. 1940년 미국 워싱턴주의 대형 현수교가 바람소리에 공명하며 주저앉았다. 영국과 미국 정부의 원인 분석이었다. 2011년 7월 서울 광진구 구의동 초대형 건물이 흔들린다고 난리를 피웠을 때 실내 영화관 스피커와 체육관 러닝머신이 공명ㆍ공진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경주 리조트 체육관이 그날 행사의 소음과 밴드음악 때문에 무너졌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부실시공과 관리소홀'이라는 천편일률적인 관심과 발표에서 벗어나 이제는 '새로운 왜?'를 찾아 새로운 안전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공명ㆍ공진의 위협은 그나마 알려진 사례일 수 있겠지만, 새롭게 생겨난 원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성수대교 사건에서 '그 때 그 보슬비'나 삼풍백화점 사건에서 '하필 많았던 고객'의 변수는 우리의 안전규정에 포함돼 있을 리가 없다. 리조트에서 행사를 하면서 '함성과 밴드의 공명ㆍ공진' 따위는 아예 고려하지 않았을 게다.

알다시피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게 되는 마지막 한 개의 깃털에 대한 안전규정까지 만들어야 한다. 맨홀 뚜껑 하나 교체하면서 2㎞ 앞에서부터 경고표시를 걸쳐놓는 나라, 혹시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 밤 새 안전요원을 세워두는 나라에는 후진적 인재(人災)가 찾아들 확률이 훨씬 낮다. 문자 그대로 '만의 하나'를 생각하는 안전의식, 부실시공과 관리소홀의 규정에만 의지해서는 아무도 어디서도 안전할 수 없다. 운수에 맡기고 '하필, 그 때'만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살아갈 순 없지 않은가.

정병진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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