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취임 1주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혁신 3개년계획'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그 핵심은 3가지이다. 첫째 공공부문의 비정상적인 관행과 낮은 생산성의 혁파 등 '기초가 튼튼한 경제 만들기'. 둘째 창업 벤처생태계 조성 및 첨단 기술과 기존 산업의 융합 등을 통한 '역동적인 혁신경제로의 전환'. 셋째, '내수와 수출의 균형 성장'을 위한 국내 서비스 산업의 규제 개혁이다.

2012년 대선 과정의 기억이 생생한 이들은 실망감을 느낄 것이다. 이른바 '개혁 진영'의 전통적 의제라고 간주되어 온 '경제 민주화'를 주요 경제 정책으로 내세우고, "지킬 수 있는 공약만 하고, 한 공약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 이미지를 강조했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당선 1주년 담화문에서는 '경제 민주화'라는 단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할 수 있는 국정과제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원래 국정철학인 '원칙이 바로 선 경제'의 구현, 특히 공공부문의 부당한 기득권과 방만 경영의 타파 및 경쟁 도입을 통한 생산성 향상만 내실 있게 달성해도 경제 분야에서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집권 초기에 경제분야의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박 대통령이 밝힌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또한 그 구체적 내용에 있어서는 과거 정권이 추진했던 정책들과 과연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공공부문 개혁, 벤처 활성화, 규제 혁파, 서비스 산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은 역대 정권들이 모두 추진해 온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정책을 과거 정권과 차별화하는 키워드로 '창조경제론'을 내세웠다. 그런데 창조경제론은 제시된 초기부터 애매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이유는 단순히 유효한 실행방안('각론')의 부재 때문이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창조' 또는 '혁신'의 경제적 본질에 대한 이해의 부족 또는 외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선진국이 개발한 기존 기술에 노동과 자본을 투입한 방식으로 달성한 고속ㆍ압축 성장이 한계에 도달한 한국경제의 현시점에서 '혁신경제'가 앞으로 나갈 길이라는 원칙에는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혁신(innovation)의 본질은 경제학자 슘페터가 이미 70년 전에 정의한 바 있다. 슘페터가 말한 바로는 광범위한 의미의 혁신의 핵심은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창조경제론이 애매모호한 근본적인 이유는 파괴의 고통을 겪지 않고 창조만 하겠다는 인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한국경제에 필요한 창조적 파괴의 대상은 4가지이다. 첫째, 비용 대비 편익이 명확히 크지 않은 정부의 규제와 이러한 규제 권한/예산을 추구/고수하는 관료 집단이다. 둘째, 현재의 규제 하에서의 기득권을 누리는 이해집단이다. 셋째,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수주의적 사고방식과 이에 기반하여 특히 IT 산업에 두드러진 '갈라파고스적' 기술 표준과 규제이다. 넷째, 신제품ㆍ신서비스ㆍ신기술ㆍ신비지니스모델에 의해 위협받는 기존 기업들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창조경제론'은 파괴의 고통은 감수하지 않고, '기존 산업에 신기술을 접목', '기존산업에 과학기술과 ICT를 융합'해서 누구에게도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창조를 추구하겠다고 해서 애매모호한 것이다. 더구나 창조경제는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기 때문에 3년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며,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이 이제는 기억에서 사라진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론'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규제 혁파와 이에 동반되는 기득권 집단의 부당한 저항을 극복하려는 확고한 의지의 천명이 필요하다.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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