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왜]

아프가니스탄 동부 낭가르하르에 사는 아니타(24·가명)씨는 15세이던 2004년 손위 올케의 남자 형제와 강제 결혼했다. 남편은 첫 날부터 "내 의지로 결혼한게 아니다"며 아니타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2010년 두 번째 결혼(아프간은 일부다처제)을 하면서 아니타에게 집을 나가라고 했다. 아니타는 친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친정 식구들은 그를 시댁으로 되돌려 보냈다. 남편은 2011년 아니타를 심하게 폭행한 뒤 처가로 데리고 가 "더 이상 데리고 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니타는 아프간 인권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인권단체가 선임해준 변호사의 중재로 남편은 "폭력을 삼가겠다"는 각서를 경찰에 제출하고 아니타를 집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한 달도 안 돼 다시 폭행이 시작됐고 심지어 죽이려 하기도 했다.

이웃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뒤 아니타는 집을 나왔다. 아니타는 "여성부와 마을 지도자 등이 세 차례나 더 중재를 해줘 이혼하려고 했으나 파슈툰족인 친정 식구들은 법적 절차를 수치라 여기는데다 내가 이혼하면 (오래된 관례에 따라) 오빠도 이혼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어 반대했다"며 "나는 오랜 기간 고통 받고 살아 와서 단지 정의를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유엔아프가니스탄지원단(UNAMA) 보고서에 등장하는 아니타씨의 사례처럼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심각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더 심해질지 모른다. 아프간 의회가 지난달 가해자의 가족과 친족이 이런 피해문제가 시비가 될 때 증언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의 특성상 가족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외신들은 이 법안이"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서명만 남아 있어 국제 사회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전한다. 탈레반 정권 몰락 이후 나아지는 듯 했던 아프간 여성 인권이 탈레반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쟁과 탈레반 집권으로 여성 인권 추락

아프간의 여성 인권이 전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30년 가까이 지속된 전쟁과 여성을 철저히 무시한 탈레반 정권 탓이 크다. 아프간은 1979년 9월 침공한 소련이 유엔의 중재로 89년 2월 철군한 후 정부와 무장 게릴라 조직인 무자헤딘의 갈등이 지속됐다. 무자헤딘 내 파벌 싸움도 심화하는 등 내전과 혼란이 이어졌다.

이 틈을 타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학생단체인 탈레반이 1994년 등장했다. 파슈툰어로 '구도자' '학생'을 의미하는 탈레반은 파벌 싸움에만 골몰하며 살인과 약탈을 일삼던 다른 무장 세력과는 달리 인민제일주의에 바탕을 둔 철저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웠다.

오랜 내전에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 충분했다. 급속히 세력을 확장한 탈레반은 1996년 9월 27일 마침내 수도 카불을 점령해 정통 이슬람 국가의 출범을 선포했다. '이슬람의 충직한 제자'를 자처하는 탈레반은 무자헤딘 게릴라들을 상대로 싸운 끝에 1997년 7월 실질적으로 아프간의 정권을 장악했다.

6인 집행위원회를 정점으로 과도 정부를 구성한 탈레반은 이슬람 지상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의 전면 시행 ▦주류, 마약 판매 금지 ▦TV 시청 금지 등의 정책을 실시했다.

특히 여성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여성의 사회활동을 철저히 제약했다. 여성은 집 밖에서 일할 수 없도록 했고 여자 어린이들의 등교를 금지했으며 여학교도 폐쇄했다. 여성들의 부르카(온 몸을 감싸는 옷) 착용을 의무화했으며 여성의 공직 참여를 일절 금지했다.

아프간 여성의 삶의 질이 극도로 나빠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2002년 유엔 자료에 따르면 아프간 여성 중 5%만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다. 18세 이하 여성 중 54%가 혼인을 했으며 산모 사망률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한국외국어대 재학 중인 아프간 출신 파힘 네잠(25)씨는 "아프간에서 여성은 어차피 결혼해 떠날 사람이라는 인식이 많아 학교도 보내지 않는다"며 "10~14세에 일찍 시집 보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억압 통치로 삶의 질이 나빠지자 아프간인들은 탈레반 정권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주민 대부분은 도덕적 정치 보다는 20여년에 걸친 내전으로 피폐해진 경제 재건을 바랐다. 탈레반은 거기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탈레반 무너진 뒤도 형식적인 개선

9ㆍ11 테러 이후 알카에다를 지원한 탈레반 소탕을 명분으로 아프간에 군사 개입한 미국은 2001년 11월 반탈레반 세력인 북부동맹과 함께 아프간의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탈레반 정권의 몰락은 여성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2002년 6월 출범한 과도 정부는 그 동안 소외됐던 여성의 인권과 권익 향상을 위해 처음으로 여성부를 만들었다. 2004년 치러진 총선에서 친미 성향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당선되고,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여볕湧?사회활동도 재개됐다. 폐쇄된 학교도 문을 열었다.

새 헌법은 '법 앞에 남녀가 평등하다(22조)'고 명시했고,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43, 44조)와 일할 권리(48조) 등을 보장했다. 정부는 또 2008년 '양성 평등'과 '여성에 권한 분산'을 목표로 한 10년 장기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법안은 유명무실하다. 여성 공무원 비율은 31%(2006년)에서 18.5%(2010년)로 감소했고, 의회는 4분의 1을 여성에게 할당해 여성 비율이 27.3%(2010년)로 꽤 높은 수준이지만 실제로 중요 의사결정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발의된 16세 이하 여성의 결혼, 강간 등 폭력 금지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0년 9월 선거에서 당선된 엘라이 에르샤드 의원은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출마하지 말라는 전화가 빗발쳤고, 심지어는 '당신과 딸을 죽일 거다. 어디에 사는 지도 안다'는 협박도 받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노력도 한계가 있다. 2012년 2월부터 1년간 아프간 곳곳을 다니며 여성을 상대로 인권교육을 하다 현재 서울의 한 사립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아프간 여성부 공무원 A(26ㆍ여)씨는 "마을 주민들이 교육 받으러 잘 모이지도 않는다"며 "'남편과 잘 살고 있는데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는 법과 정책이 왜 필요하냐'고 따지는 여성도 많다"고 했다. 그는 "다섯 살 먹은 남자 어린이가 '네가 뭔데 남의 일에 간섭하느냐'며 따져 놀라 도망 나온 적도 있다"며 "이런 활동 중 여성 인권 문제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지방 부족들에게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고 탈레반의 영향력이 있는 지역에서는 지방 정부의 여성부가 문을 닫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식주 문제 해결과 교육이 시급

아프간 여성 인권은 당장 지방 부족세력과 미군 철수가 큰 변수다.

아프간 평화재건사업(PRT)의 일환으로 2010년 7월부터 1년간 아프간에서 양성 평등 교육을 담당했던 송현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지방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는 파슈툰족 등 보수세력은 자국을 침공한 서방이 지적한 인권 문제와 개혁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며 "4월 대선을 앞둔 카르자이 대통령도 미국과 비전투부대 잔류에 합의하고도 서명을 미루는 등 보수세력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파슈툰족은 아프간 인구의 38%를 차지하는 최대종족으로, 이들은 정부의 통제나 외부의 간섭을 싫어하며 수백 년 전부터 자체 전통에 따라 가부장적인 생활을 해왔다. 송 교수는 또 아프간이 1인당 국민소득 515달러로 최빈국 중 하나라는 점을 언급하며 "인권 문제를 다루려면 우선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며 "그런 것이 해결되더라도 인권 향상에는 우리도 경험한 것처럼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아프간 여성부 공무원 A씨는 인권 향상을 위해 공직자의 인식 개선을 주문했다. A씨는 "남성 국회의원 중 상당수가 여성 인권에 대한 의식이 없어 가족ㆍ친지의 증언 금지 법안도 통과된 것"이라며 "이들의 인식이 개선돼야 여성 폭력 금지 법안도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방은 TV도 없고, 홍보 수단도 마땅치 않아 법이 바뀌고 새로운 정책을 시행해도 이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30년 가까이 내전으로 교육 받지 못한 젊은 세대의 문맹률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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