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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12월 24일] 대선 승복ㆍ불복은 국민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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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12월 24일] 대선 승복ㆍ불복은 국민의 몫

입력
2013.12.2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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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일주일 남았다. 올해 심각하게 논의됐던 많은 말, 하지만 내년엔 잊혀져 버렸으면 하는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치권에서 한 가지 거론한다면 일년 넘게 지난 대선 얘기며, 특히 승복 불복 논란이다. '승복한다, 승복하라'는 말도 그렇고, '불복한다, 불복하라'는 말도 그렇다.

민주당의 속내를 짐작해 본다.'안타깝고 억울하지만 승복하지 않을 수 없다. 2% 빠진 절반이 우리편이니 이제 힘세고 멋있는 야당을 해보자. 당 내에서 일부 불복하자는 움직임이 있지만, 승리한 여당이 우리가 승복할 수 있는 국면을 만들어 갈 것이다. 국정원 사건과 NLL 문제 등 스스로 켕기는 대목들이 있으니 더욱 그렇다. 대선 불복을 외치고 나서면 결과적으로 우리만 손해다. 새누리당이여, 제발 우리가 승복할 수 있는 명분과 여건을 만들어 주오.'

새누리당의 계산을 추측해 본다.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과반수 대통령이 되었지만 48%의 단일성 비토 세력을 안고서는 효율적인 정부가 되기 어렵다. 많은 국민들이 당락을 좌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국정원과 NLL 이슈가 확산되고 있으니 걱정이다. 야당이 대선 불복 선언을 해 주면 좋겠다. 스스로 뽑은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든다면 최소한 51.6%의 국민은 똘똘 뭉치게 될 것이다. 야당이 멋지게 승복하고 나서면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된다. 제발 승복하지 말아주오.'

승패 결과를 깨끗이 인정하는 서구에 '관중의 챔피언'이라는 게 있다. 복싱경기에서 챔피언과 도전자가 마지막까지 싸워 비등한 결과가 나왔을 경우다. 판정에서 1, 2점 차이로 승부가 갈렸을 때, 이긴 쪽은 협회가 공인하는 챔피언벨트를 차지하고, 패한 선수는 '관중의 챔피언'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패배자 모두에게 그런 찬사를 주지는 않는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관중 상당수가 '판정엔 졌지만 실제로는 이겼다'고 믿는 상황이 전제돼 있다. 관중은 챔피언벨트를 차지한 선수 이상으로 자신들의 '챔피언'에게 환호하고 격려를 보낸다. 이긴 자는 벨트를, 진 자는 사랑을 차지한다.

지난 대선은 특별했다. 1987년 이후 처음으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온 힘을 짜내 승부를 겨뤘다. 제3의 정당도 없었다. 무소속 후보 4명의 득표율 0.4%는 양당제의 미국 대선에서의 무효투표 비율 정도였다. 그 어느 선거보다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이루지 못했다. 패배를 인정한다." 문재인씨의 기자회견은 대선 후유증을 가라앉히는 데 기여했다. 그는 스스로 '관중의 챔피언'으로 남고자 했다.

새누리당이 내심 '민주당의 불복'을 기다렸던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48%의 단일성 비토 세력을 와해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복하는 것이냐? 아니다. 그럼 승복하는 것이냐? 글쎄…" 양당 사이에 이런 눈치들이 오가는 것만으로도 '관중의 챔피언'에 대한 사랑과 환호는 희석되고 있었다. 문씨는 10월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수혜자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스스로 '관중의 챔피언'에서 '패배한 도전자'로 옮겨 앉았다. 민주당 안에서부터 승복 세력과 불복 세력이 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48%의 단일성 비토 세력에도 균열이 확인됐다. 불복 논란은 최소한 51.6%의 승복 세력을 다시 결집시켰고, 무엇보다 사안의 본질인 국정원과 NLL 논란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민주당의 속내는 속내로 그쳤지만, 새누리당의 계산은 현실화 했다.

대선에 대한 승복이냐 불복이냐는 선거에 참여한 국민이 결정할 문제이지 당사자인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활용할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일년이 넘도록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은 51.6%나 48% 어느 쪽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국민의 관심은 '사안의 본질'에 있다. 그래서 내년엔 승복 불복이란 말이 정치권에서 아예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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