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 혹은 불침번, 경계하여 일깨우는 사람 등을 얘기할 때 그리스 신화 속 '아르고스의 눈'을 생각한다. 제우스의 부인 헤라의 경호원이었던 셈인데, 온 몸에 100개의 눈동자가 열려있어 24시간 어떤 상황에도 모든 눈을 감는 일이 없다.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금세 알아채고 경고를 발하면서 즉각 대응했다고 한다.

항공기 내에서 일어난 라면 상무의 여성승무원 폭행에 이어 대형 우유회사 영업사원의 대리점 사장 핍박으로 갑(甲)의 을(乙)에 대한 횡포, 소위 '갑을문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어제는 모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지도교수의 횡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한 사실도 드러났다. 전공의들마저 이러한 갑을문화의 피해자라며 떨쳐 일어난 것이다.

갑을문화는 당사자 사이의 계약으로 시작된다. 확실한 문서로 만들어져 양쪽이 한 부씩 나눠 갖는 것이 기본이지만 관행과 관습으로 으레 유지되어오는 무언의 약속들도 많은 것이어서 계약문화 문제와 직결된다. 서양의 경우 하나님을 갑으로 하고, 그 외는 모두 을로 여기는 인식이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갑을관계는 신앙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을과 을, 을끼리의 갈등은 계약의 문제로 해법을 찾았다. 개인과 집단은 물론 국민 국가 사회라는 거대 당사자까지 계약의 주체나 객체로 인식해오고 있다.

우리의 갑을계약은 원천적으로 불공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서든 관행이든 구두약속이든 다르지 않다. 상호 동등한 입장이라며 서명도 같이 하고, 도장도 같이 찍고, 손가락도 같이 걸지만 결코 동등하게 볼 수 없다. 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당사자들이 갖고 있던 사회ㆍ경제적 지위 차이, 힘의 강약이 실제 내용을 좌우하는 불공정한 계약이다. 결국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비정상적인 관계를 공식화 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원천적인 불법행위를 합법행위로 포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경우 이러한 불공정행위를 불법행위로 간주하여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게 불과 1980년대의 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발족(1981년 4월)하면서부터다.

경제민주화라는 거대 논의의 출발점과 같이 공정한 거래를 위한 갑을문화 개선 논의가 국회에서 시작됐다. 새로운 법을 제정해 공정거래의 틀을 짜놓겠다는 의지가 충만해 보인다. 갑과 을의 불공정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갑의 힘을 줄이고, 을의 힘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전자 쪽에 더 관심이 많고, 야당인 민주당은 후자 쪽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불공정거래 가운데 중요한 모델들을 찾아내 갑을 제어하고 을을 부양하는 법을 만들어 강제하는 일은 당연하다. 강자-약자의 갈등을 조정하는 이러한 법안들은 한동안 혼돈의 와중을 헤매던 경제민주화 정책의 물꼬를 트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게 분명하다.

그러한 법안들이 얼마나 실효성을 갖게 될 것인지는 '갑을문화 개선법' 제정 이후의 문제다. 1981년 국무총리실 산하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생기고, 1996년 번듯한 위원회(장관급 위원장)로 발전하면서 많은 을들은 '경제 검찰'에게 크나큰 기대를 가졌었다. 특히 대기업 밑에서 하청업이나 대리점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그랬다. 하지만 요즘 문제되고 있는 납품단가 부당 인하나 가맹사업 약속 위반 등을 이유로 매년 수십~수백 건씩 불공정을 호소했으나 제대로 '경제 검찰'의 역할을 해준 일은 두세 건에 불과했다.

입법의 실효성을 담보하고, 또 다른 입법을 다그치는 일은 결국 을들의 몫이다. 30년 이상 꿈쩍도 않던 갑을문화의 관행을 깨뜨리자고 정치권이 뒤늦게나마 솔선수범하여 나서는 원인과 이유를 살펴보면 을들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갑을계약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힘을 모아 감시하고 경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그리스 신화의 아르가스는 100개의 눈을 가졌으면서도 유혹의 피리소리에 취해 마지막 두 개의 눈동자마저 잠들어 버렸고, 결국 신화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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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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