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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산부인과 의사 경험 살려 건강한 목장 운영 경주마 우승의 기쁨, 馬主 아니면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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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산부인과 의사 경험 살려 건강한 목장 운영 경주마 우승의 기쁨, 馬主 아니면 몰라요”

입력
2013.03.3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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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례나 최고 경매가 기록20년 전 개인마주제 도입때 인연… 병원 수입 목장에 쏟아붓기 일쑤말귀신 씌면 죽어야 벗어나● 최고의 2세마 배출 비결다른 목장보다 밥 한 끼 더 줘… 관찰기회 많아져 질병 조기발견새똥 박멸 등 위생관리 철저히● 갈 길 먼 한국 말산업수준 높은 씨숫말 적고 과잉생산정부, 경마를 도박으로 보지 말고 10조원대 사설경마 시장 잡아야

3월 25~26일 KRA한국마사회 제주경마본부 주최로 제주경마목장에서 열린 올해 첫번째 국내산 2세마 경매에서 최고 기록이 깨졌다. 제주 명마목장(제주시 오등동)에서 생산한 두 살짜리 수말이 2억9,000만원에 낙찰됐다. 작년 기록은 2억6,000만원. 최고가를 기록한 수말은 한국 경마 사상 최다연승(17승)을 기록한 미스터파크를 낳은 종마 엑톤파크를 아버지로, 2007년 미국서 들어온 미스엔텍사스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이번 기록은 마사회가 아닌 민간목장 소유의 씨수말 새끼가 최고가를 기록한 것으로도 최초였다.

명마목장은 2010, 2011년에도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국내 명마 생산가의 명문. 소유주가 박정배(49)씨로 되어있지만 실질적인 주인이자 관리감독은 박씨의 아버지인 박성구(73)씨가 맡고 있다. 올해는 국내에 개인마주제가 도입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산부인과 의사로 1993년 3월 개인마주제가 실시될 때 마주가 되면서 말과 인연을 맺은 그에게 말사랑을 들었다.

-3월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것이 무슨 뜻이지요?

"우리나라는 말 경매가 네 번 있는데 만 두 살이 되어서 경주마로 데뷔할 수 있게 된 말을 경매하는 시장이 3월 5월 9월에 열립니다. 11월에는 16~18개월 말을 경매하고요. 3월 경매가 2세마 가운데서는 제일 좋은 말이 나옵니다. 미국처럼 경매시장이 다양한 곳에서는 임신한 말, 임신하지 않은 암말, 2세마, 1세마 등을 한꺼번에 경매하는 '믹스드세일'이라는 것도 11월에 있어요."

-어쩌다 말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까?

"고향이 경남 의령이고 고등학교(서울사대부고)때 서울에 올라왔는데 마주가 될 때까지 말은커녕 경마장도 가본적이 없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수경사에서 군의관을 지내 군 출신과 가까웠어요. (예비역 장성 출신인) 유승국씨가 마사회장으로 있을 때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알현하고 한국의 마사회장이라고 소개를 하니까 말을 몇 마리나 가졌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1,000마리쯤 갖고 있고 경마도 다 내가(마사회가) 한다니까 그게 무슨 경마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외국처럼 개인마주제를 만들기로 한 겁니다. 제가 의대 동기 중에서는 제일 먼저 87년에 개업을 해서 용산에서 자선산부인과를 할 때인데 용산에서 제일 환자를 많이 봤어요. 그런데 솔직하니 의사라는 게요, 병원을 하다 보면 죽기 몇 달 전까지 환자를 보는 코스거든요. 취미도 없고. 의사들끼리는 '30평 인생'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유승국씨 비서인 오세창씨가 저희 병원에 와서 개인마주를 권하는 데 솔깃해요. 집사람은 말렸지요. 그런데 큰아들이 '아버지 산부인과 하느라 고생했는데 하고 싶은 거 하게 두라'고 해서 시작을 했습니다. 그때 개인마주로 같이 시작한 친구가 관동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로 간다면서 자기 말 인수를 해달래요. 바바리아라고 뉴질랜드산 말인데 5전인가 뛰었지만 한번도 우승을 못한 말인데 제가 사면서 우승을 했어요. 재미가 있었어요. 그러다가 97년인가 마주협회 부회장을 하는데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호주 뉴질랜드 말만 사지 말고 미국 말도 사달라고 저희들을 초청했어요. 그래서 98두를 사왔는데 지역신문에 '한국에서 통조림 깡통에 들어가기 직전의 말을 사갔다'는 기사가 난 거에요. 그때는 말의 수준이 너무 급격히 올라도 국내 말과 경쟁이 안되니까 일부러 몇 천 달러짜리 말만 사라고 가격제한을 할 때거든요. 제가 신문기사를 보고 화가 나서 거기 조교사들한테 현금을 줄 테니까 좋은 말 있으면 추천을 해봐라. 그래서 4만5,000달러짜리 말 한 마리를 사서 메릴랜드 목장에 두고 미국 마주를 했습니다. 그때까지 1승도 못하던 말이 제가 마주로 있는 2년반 동안 미국 중급 경마대회인 G4에서 3승을 하고 2등을 두 번 해서 14만 달러를 벌었어요. 미국은 이면계약이 좀 복잡하고 그래서 한국에서 생산자로 나섰습니다."

-병원은 그만 두시고요?

"1997년에 경기 이천에서 목장을 시작해서 2004년에 제주도로 옮겼는데 2002년까지 병원도 계속 했습니다. 마지막까지도 환자를 하루에 100명씩 봤습니다. 목장이 돈이 많이 들어서 병원에서 번 돈을 붓고 젊은 시절에 샀던 땅도 다 팔아서 넣었습니다.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 '말귀신이 씌면 죽을 때까지 못 벗어난다'고. 말이라는 게 정말 깨끗한 동물이고요. 사람한테 순종을 하고요. 큰 경주 같은 데 우승을 했을 때 기쁨은 마주가 아니면 모릅니다. 처칠 총리도 영국 총리보다 더비 우승 마주가 되고 싶다고 그랬잖습니까?"

-마주로 성적은 좋습니까?

"마주 첫해 랭킹 서열3위였나 상금을 많이 벌었어요. 생산자가 된 다음부터는 제일 좋은 말은 다 팔고 하자가 조금씩 있는 말을 갖고 있습니다. 생산자가 좋은 말을 가지면 다른 사람이 안 삽니다. 찌끄러기만 판다 그러니까요. 그런데도 작년 상금 서열 38위입니다. (국내 마주는 981명)"

-생산자로 제일 보람을 느꼈던 때는요?

"처음 우승의 기쁨을 안겨준 바바리아가 퇴역을 하면서 새끼를 낳았는데 두번째 자마가 무패강자입니다. 15전 13승인가를 기록하고 2003년에는 3세에 뛰는 가장 큰 경주인 코리안더비, 마사회장배, 농림부 장관배를 우승해서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했습니다."

-현재 목장은 어느 정도 규모인가요?

"빌려서 쓰는 땅까지 합하면 6만평 정도 되는 초지에 종비마(씨암말)를 비롯해 50두 정도가 있습니다. 종마(씨숫말)는 가격이 워낙 비싸서 마사회 것을 쓰거나 개인목장 열 다섯 군데 정도가 연합해서 씨숫말을 사옵니다. 저희도 신디케이트로 종마가 세 마리 있습니다."

-역시 말은 제주로가 맞습니까?

"육지에 비하면 겨울이 짧고 여름에는 오히려 선선하기 때문에 초지가 오래 가요. 제주에는 바다바람이 불고 해만 지면 열대야 현상이 없거든요. 목장이 가까이들 있으니까 종부 붙이러 가기도 편하고요. (이번 종마도 제주 이시돌 목장 것이다.) 제주도는 개업 수의사도 8명이나 있는데 육지에는 수의사도 마사회 종마목장이 있는 전북 장수에 공동으로 개업한 두 명 밖에 없어요. 종마 붙일 때도 이천에서 장수까지 가려니 힘들고요. 대신 제주는 돌이 많아요. 발굽 아래 말랑말랑한 곳에 돌이 끼면 염증이 커지거나 뼈도 다치는 수가 있어요. 비가 많아 오는 것도 단점입니다."

-거의 매년 최고의 2세마를 배출하는 비결이 있나요?

"저희는 밥을 세끼를 줘요. 보통은 풀 뜯어먹는 것과 별개로 밥을 두끼 주거든요. 밥을 자주 주면 말이 다친 데 있나, 불편한데 있나, 더 많이 말을 관찰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상처가 나도 빨리 발견하니까 치료기간도 단축되고 말이 죽는 경우도 줄어요. 인력이 많이 들고 사료비는 좀더 많이 들어요. 마방의 위생관리도 철저히 해요. 우선 마방에 그물을 쳐놓아서 새들이 못 들어오게 해요. 새똥이 굉장히 강한 산성이라 말의 호흡기 질환에 아주 좋지가 않아요. 제주도 내려가던 해에 새로 낳은 새끼 네 마리가 한달 만에 폐렴으로 내리 죽었어요. 수의사들이 원인 규명을 못했는데 마방에 연결된 통관을 뒤졌더니 그 안에 새똥이 가득 차있어요. 다 긁어내고 소독을 했더니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지 않게 됐어요. 물도 구유에 받아놓고 그대로 먹이는데 저희는 자동급수기를 설치해서 먹는만큼 보충되게 해요. 최우수목장으로 선정됐을 때 발표를 했더니 요즘은 제주도에 그런 목장이 늘어났어요."

-특별히 애착을 가진 말이 있나요?

"텔레그램로드라고 켄터키세일에서 5만8,000달러 주고 샀어요. 라이언하트라는 종마하고 임신한 상태로 제가 사왔어요. 그렇게 나온 첫 자마가 블루핀이라고 아주 적게 나왔는데 지금도 뛰고 성적이 아주 좋아요. 블루핀이 잘 뛰니까 라이언하트 새끼들을 한국에서 많이 사왔는데 다 잘했어요. 텔레그램로드의 두번째 자마가 노던에이스라고 1,000미터 한국기록을 갱신했어요. 노던에이스는 조교사가 관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몸무게를 재다가 넘어졌어요.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로 코리안더비를 나갔는데 출발하자마자 다리가 꼬여서 골절이 됐어요. 그런데도 끝까지 뛰어서 꼴등을 안했어요. 나중에 수의사와 살펴보니까 다리뼈가 여덟 조각이 났어요. 그런데도 끝까지 뛰었으니 얼마나 근성이 좋은 말이에요? 말은 다른 건 후천적으로 키워도 승부근성만은 타고 나야 하거든요. 세번째 자마가 챔피언벨트라고 부산에서 1군 우승도 했는데 수술을 하다가 죽었어요. 텔레그램로드도 작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체로 제일 마음 아플 때는 말들이 죽을 때인가요?

"그렇지요. 말은 말을 못하니까 며칠씩 밤을 새우고 지켜도 어쩔 수가 없을 때가 많아요. 말은 90%가 산통으로 죽어요. 산통이란 배앓이를 말합니다. 경주마로 쓰이는 더러브렛종은 근친교배로 개량을 너무 하다보니까 질병에 약해요. 별명도 깨지기 쉽다고 '유리마'예요. 산통은 보통 창자가 꼬이거나 기생충이 장간막에 뚫고 들어가서 변이를 일으켜서 생겨요. 샌드콜릭이라고 말들이 흙이나 모래를 주워먹은 게 창자에 쌓여서 꼬이는 경우도 있고요. 말의 산통은 예방도 안되고 예측도 할 수 없어요. 새끼를 낳은 후에 창자가 자리잡히기까지 산통이 오기도 하는데 어미말이 죽으면 고아마가 생겨요. 고아마가 생기면 사람이 먹는 분유를 타서 두 시간마다 줘요. 아프면 잠도 안자고 마방을 지키고요. 그래서 우리끼리 그래요. 말한테 쏟는 걸 사람한테 쏟으면 다 유명한 아빠고 부모한테는 효자 소리 듣는다고요."

-한국의 말산업 자체는 잘 흘러가는 것 같으세요?

"말이 과잉생산되어서 어렵습니다. 매년 1,300두 정도가 나오는데 실제로 소모되는 것은 850두에서 900두 정도예요. 해외진출을 도모하지만 잘 안됩니다. 마사회가 작년에 말 6마리를 말레이시아로 수출했는데 출혈수출이거든요. 마사회에서 경비를 대고 미국경마대회에도 진출시켰는데 작년에 중급정도 대회인 플로리다 오칼라 경마장에서 1,700미터 1위를 했어요. 그런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노력은 해도 워낙 격차가 크니까요. 미국의 중급 정도 경마장에서 뛰어도 1,000미터 경주면 20마신(말의 몸길이로 재는 단위) 정도 차이가 나요.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최고 명마를 들여와서 품질 개량을 할 수도 없어요. 그러면 현재 있는 말들과 격차가 너무 나서 되려 나빠요. 지금도 마사회가 300만 달러에 들여온 종마 매니피와 새끼를 낳는 것을 로또라고 해요. 매니피 새끼들이 상금을 쓸고 있으니까요. 3월 경매에서도 매니피 자마 다섯 마리가 모두 8,000만원 이상을 기록했어요. 세 마리는 1억이 넘었고요. 수준 높은 씨숫말이 많아서 서로 섞고 그래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그러면 말 산업을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요?

"일단은 경마가 도박을 벗어나야 해요. 그리고 경마로 생긴 이익은 말축산에 쏟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미국은 열 명 중에 한 명이 고액도박자라면 일본은 두 명이고 우리는 절반이라고 해요. 일본이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 경마장을 엄청 많이 지었어요. 정치에 관심 갖지 말고 도박이나 하라는 거지요. 그래서인지 정부에서도 이걸 도박으로만 봐요. 도박으로 보니까 세금을 너무 많이 떼요. 경마에서 환급률이 73% 밖에 안되거든요. 일본은 76%, 미국은 경마장마다 다른데 보통 85%예요. 환급률이 적으면 불법도박이 기승을 부립니다. 마사회가 하는 경마매출이 8조원 정도 된다는데 마사회 경마중계를 불법으로 받아서 사설 도박을 하는 '마떼기' 경마 시장이 10조원이라는 말이 있어요. 거기서는 80%를 환급해준다니까 사람들이 몰리는 거예요. 대통령이 지하경제를 양성화한다 그러는데 '마떼기'만 잡아도 세금 2조원은 금방 걷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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