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현대 정치인 가운데 가장 평가하는 인물이 영국의 토니 블레어다. 노동당에서 좌파운동에 몸담아 온 그가 1997년 총리가 되면서 보수당 정책까지 과감히 수용한 '제3의 길'을 제시했다. 고답적 이념의 틀에 갇혀 있는 한 정권의 반복만 있을 뿐, 결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각성의 소산이었다.

대처 후 다시 쇠락해가던 영국은 그의 집권 10년 동안 활력을 되찾고 제한적이나마 국제적 주도국가로서의 위상도 회복했다. 다만 지나친 친미정책으로 '부시의 푸들'이란 조롱을 받았으나, 그가 제시한 정치노선은 이후 도도한 시대적 흐름이 됐다.

'새 노동당은 낡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아이디어와 이상의 정당이다. … (우리의) 비전은 추진력과 목적, 에너지를 가진 나라로의 국가혁신이다. … 정책에서는 좌우 양 극단의 고립주의와 일방주의를 거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시도될 것이다.' 그가 야심 차게 선언한 97년 영국 노동당 선거강령의 핵심이다.

우리도 이랬어야 했다. 민주화 성취 후 속속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386세대에게 걸었던 기대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부당한 권력에 분연히 온 몸으로 맞섰던 그들이야말로 그 순정한 도덕적 기반 위에서 구태정치와는 다른 새 정치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DJ 시대에 선두그룹이 정치일선에 뛰어들고, 이어 참여정부 시절 386들이 대거 정부와 국회에 합류해 큰 흐름을 형성한 뒤에도 청량한 바람은 끝내 불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더 빠르게 기존정치에 스며들었고, 하나 다를 것 없는 기득권 세력이 됐다. 도리어 전에 없던 부작용만 잔뜩 양산됐다.

정치가 허망한 이념의 싸움판이 되면서 나라를 같은 양상으로 찢었고, 파벌은 끝없이 분화해 난맥을 이뤘다. 친노386조차 갈갈이 찢겨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진짜 친노, 가짜 친노'니 하는 코미디 같은 갈등상황이 연출됐다. 정치행위의 동기는 오직 하나, 당내 주도권 경쟁으로만 보였다. 운신의 여지가 없던 독재시절엔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스스로가 국가운영의 주체가 된 뒤에 구습은 더 심해졌다.

따져보면 80년대 운동권 문화가 그랬다. 대중투쟁ㆍ혁명투쟁론서부터 CAㆍPDㆍNLㆍ주사파, 비판적지지ㆍ민중후보파 따위로 끝없이 분화하면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 기성 정치권 이상이었다. 민주화를 표방한 이들이 사실은 배타와 독선, 무비판과 상명하복 문화 속에서 토론과 조정, 합의 등의 민주주의 훈련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건 기막힌 아이러니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386들의 이런 태생 체질과 무관하지 않다. 추상적 담론과 배타적 투쟁에만 익숙했을 뿐, 현실의 삶과 구체적 실현방식에 대한 디테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정치적 성공을 만든 민주화 훈장은 정치적 위세를 과시하는 완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잇따라 보수정권을 만들고, 평생 정치와 무관했던 동년배의 안철수를 이른바 민주세력의 대안으로 만든 큰 책임은 386, 지금의 486(상당수는 이미 50대에 진입한 586이 돼있지만)에 있다. 도리어 과(過)가 공(功)을 덮을 만큼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국민들도 이들의 민주화 기여에 대한 부채의식을 일찌감치 털어냈다.

민주통합당의 486들이 정치모임을 해체하면서 뒤늦은 반성문을 냈다. 새로운 정치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정치권에 입문했으나, (계파에 매몰돼)주류집단의 논리를 대변ㆍ변호하는 역할에 그쳤고, 국민의 삶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데 미흡했다는 게 골자다. 솔깃하지만 전에도 반성 이력이 있는데다, 굳어진 체질로 보아 아직 진정성을 평가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어쩌랴. 밉든 곱든 이들은 앞으로도 최소 10년은 우리 정치의 중심을 감당해야 할 세대다. 남은 시대적 책임이 가볍지 않음을 인식하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역사와 국가에 기여할 방법을 고민하기 바란다. 지천명(知天命) 나이에 사람이 바뀌는 게 과연 가능한 지는 모를 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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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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